brunch

걔들 시험 점수는 다 높아

by 김준정

“어제 수학학원 갔는데 애들이 미쳤어. 선생님 말할 때마다 초등학생도 안 쓰는 유치한 말대답 하면서 방해하더라니까.”

“선생님 힘들겠네.”

“근데 걔들 시험 점수는 다 높아.”


초밥이는 중간고사가 끝나고 수학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원장, 학부모 눈치 보느라 애들을 혼내지도 못하고 선생님이 느꼈을, 내가 너무나 잘 아는 감정 때문에 속에서 뭔가 울컥 올라오는 것 같았다.


초밥이가 높다고 하는 점수는 80점, 90점일 거다. 시험 때문에 학원을 다니고, 점수만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시험이 끝나면 공부할 이유가 사라진다. 학원 선생님은 시험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소중한 관계로 여기지 않는다.


결석하려면 부모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싫은데 억지로 학원을 와야 한다면 아이들은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 주는 방식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푼다.


학생들을 품위 없게 만드는 건 어른이다. 학원 수강을 포함한 자기 일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책임감도 가진다. 예의를 지키고 상대를 존중할 수 있다.




보미와 산책하는데 누가 아는 척을 했다.

“쌤, 저예요. 진이.”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
“막판에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천안에 있는 대학에 입성했습니다.”
“집 떠나는 거 성공했네. 축하한다.”

“네. 집을 떠난 건 신의 한수인 것 같아요.”
“그래. 건강해 보인다.”
“여자 친구도 생겼습니다.”

“그것도 축하해.”
“몰랐는데 제가 연애에 재능이 있더라고요.”

“하하하.”
“마지막에 부끄러운 모습 보여서 죄송했습니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70점을 넘었다고 좋아했던 진이는 고 3이 되면서 부담감 때문에 게임으로 도망치더니 결국 인사도 없이 과외를 그만뒀다. 그리고 이년 만에 우연히 길에서 만난 거였다.


수업 직전에 결석한다고 문자하고, 보강을 잡으면 결석하기를 반복했다. 지금 모습을 보면 무책임한 아이가 아니라 심적 에너지가 바닥나 약한 모습이 발현되었던 것뿐이었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은 없다.


진이는 대화가 되지 않는 아버지, 간섭이 심한 어머니 사이에서 힘들어했다. 자율성이 없는 환경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회피하는 성향이 강화되었다.


“지금 일어나는 문제는 당시에는 알 수도 해결할 수도 없어. 시간이 지나야 이해할 수 있어. 거리를 두는 것도 방법이고.”
“집을 떠나야겠어요. 경기권에 있는 대학을 가야겠어요.”


진이와 그런 대화를 했었다.


“선생님 이름 검색해봤는데 꿈 이루셨던데요? <엄마의 원피스> 읽어봤어요. 선생님 생각 많이 났어요. 2년 동안 배웠던 시간이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무례를 경험할 때마다 상처받았고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가르치는 일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생활비만 벌 수 있으면 과외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주 가끔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도 있겠지. 역시 나는 가르치는 일은 맞지 않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긴 살 건데 나중에 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