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차라투스트라 아세요?”
“잘은 몰라.”
“도덕 시간에 니체가 나와서 관심이 생겼거든요. 제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번 읽어봐. 나는 포기했지만.”
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찾아 현민이 앞에 놓아주자 현민이는 나한테 책이 있을 줄 알았다며 좋아하더니 빌려갔다.
다음날, 현민이가 읽을만한 니체에 관한 쉬운 책이 없을까 하다가 <곁에 두고 읽는 니체>가 떠올랐다. 책장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건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혀있는 게 아닌가.
<곁에 두고 읽는 니체>는 학원에 비치했던 책이었다. 폐업할 때 열 권이 안 되는 책을 구조해왔는데 그중 하나였다. 예전에 줄 쳤던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처음부터 다시 살아도 좋을 삶을 지금 살고 있나, 아득함과 의지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책은 읽지 않고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영향을 준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나가서 산책하기도 사람을 만나기도 마땅치 않은 날 펼쳐 든 책 한 권으로 다른 세계에 빠져든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책과 만나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 같은 순간.
니체, 쇼펜하우어, 공자, 맹자, 장자도 때가 되면 만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믿음으로 나는 소설책을 읽고는 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50쪽을 읽고, 유용한 지식을 참신한 구성과 탁월한 유머로 풀어낸 책이라고 감탄하고 다시 펼치지 못한 책이다. 분명 나한테 도움 되고 읽으면 재미있다는 것도 알지만, 한 스푼만큼의 집중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밀려나버렸다. 완독은 독서모임에 추천하고서야 가능했다.
이 책은 14명의 철학자들의 고향 혹은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박물관을 기차를 타고 찾아가는 구성이다. 독자에게 철학자를 만나러 가는 기차에 올라 타라고, 철학자들이 삶과 철학을 어떻게 버무려 살아갔는지 보자고, 그 태도를 기차의 규칙적인 파동처럼 몸에 감각으로 새겨 넣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딘가로 향해가는 기차의 동적인 이미지처럼 철학도 멈춰있는 학문이 아니다. 살지 않고 철학했다고 할 수 없고, 삶과 철학은 함께해야 한다는, 경험 없이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은 “고통의 부재”에서 온다고 말했다.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의사가 다가와 포도 한 송이를 준다면 포도 맛을 즐길 수 없다. 부러진 다리의 치료가 먼저인 것처럼, 삶의 큰 것은 그대로 두고 사소한 즐거움을 쫒는다고 해서 행복할 수 없다고 했다. 멋진 비유다.
지난 몇 년간 내가 고민했던 것도 이와 비슷했다. 마음은 절뚝거리면서 포도를 많이 가지면 뭐하나. 포도를 포기하지 못하는 건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이고, 그렇다면 내 인생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포도보다 아침에 눈 떴을 때 하루에 대한 기대가 있는 삶을 선택했다.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게으르거나 결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쾌락으로 향하는 추론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옷을 산 뒤를 그려본다. 내가 욕망하는 건 내게 없는 무엇이다. 결제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 옷은 이미 가진 옷들 중 하나가 된다.
이것 하나 못사? 어쩐지 내 처지가 측은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사긴 살 건데 나중에 살 거야’ 하고 미루기 전략을 쓴다. 희한한 건 그사이 다른 물건이 눈에 들어와 그걸 들여다보고 있다는 거다.
하나 정도는 추론 따위 하지 않고 사도 괜찮다. 하지만 반복되면 나는 돈 버는데 많은 시간을 써야 하고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또다시 절뚝거리고 아침에 눈뜨기가 싫어진다. 간신히 빠져나온 쳇바퀴에 다시 갇히고 말 거다.
사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책이다. 중고책을 파는 톡딜이 떴는데 100권의 책 중에 <곁에 두고 읽는 니체>가 있었다. 나는 “냉철한 추론”을 거쳐 이 책을 포함해서 14권을 구매했다.
나는 현민이에게 <곁에 두고 읽는 니체>를 줬다.
“아! 사서 선생님한테 니체에 관한 쉬운 책 없냐고 하니까 이 책을 추천해줬는데 친구가 내 대출카드로 책을 빌리고 연체를 해서...”
대출하지 못했는데 바로 그 책이 눈앞에 있으니까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아까도 “김밥 있으니까 편의점 가지 말고 와”하는 내가 보낸 문자를 보고 어디서 자기를 보고 있나 두리번거렸다며 “쌤 혹시 신기 있어요?”하고 물었다.
이번 추론은 성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