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이가 물었다.
“우리 집에 다리미 있어?”
“너잖아.”
“노잼.”
초밥이 본명 ‘나림’은 이름 모두에 받침이 있는 어미가 이름으로 불편했던 경험을 자양분 삼아 지은 창작물이다. 이름 두 자 중 한 자는 받침이 없고 경쾌한 느낌의 촌스럽지 않으면서 흔하지 않은 이름이 바로 ‘나림’이다. (이번 글에는 초밥이를 나림으로 호칭할게요)
별명도 생각해야 했다. 준치, 죽쟁이 같은 일차원적인 것부터 ‘준 정 받을 정’ 속담 같은 별명이 있는 나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했다. 이걸로 설마 별명이 생기지 않겠지 하는 나의 기대는 어린이집을 가자마자 깨지고 말았다. 나림이는 ‘다리미’가 되었고, 이어서 미나리, 미나리 찜이 되었다.
다리미 아니 나림이에게 다리미와 다리미판을 내줬다.
“다리미판 필요 없어. 바닥에 대고 하면 되지.”
“다리미판을 사용하길 바래.”
내가 잠든 사이 나림이는 우리 집에 하나의 기록을 추가했다.
“결국 다리미판은 사용하지 않았구나.”
누가 봐도 다리미 눌린 자국이었다. 방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자리라 못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다리미가 그렇게 금방 뜨거워질 줄 몰랐거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나림이의 4살부터 15살까지의 역사가 구석구석 남아있다. 다리미 자국을 보고 있노라니 나림이의 처음들이 떠올랐다.
나림이는 자기 이름이 발음이 안돼서 ‘나미미’라고 했다. 나미미는 내가 뭘 하자고 하면 그게 뭐든 간에 “좋아”부터 외쳤다. 영화관, 미용실, 병원에 처음 갈 때 긴장할 법도 한데 호기심 가득한 눈에다 씩 웃는 표정이었다. 예방접종이 밀려 세 대를 맞아야 했던 날에도 나미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씩’ 웃으면서 주삿바늘을 주시해서 간호사가 그게 더 무섭다며 차라리 울라고 했다.
1년간 학원 위층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나림이는 유치원 버스에 내리자마자 학원으로 달려와 교실 창문에 얼굴을 갖다 대고 나를 찾았다.
‘오빠, 삼촌 게임’은 나림이가 중 3 남자아이들 얼굴을 보고 오빠 또는 삼촌을 말하는 거였는데, 신기한 건 한번 오빠는 영원한 오빠, 한 번 삼촌은 영원한 삼촌이었다.
언젠가부터 아이들도 그 시간을 기다렸는데, 이게 뭐라고 아이들은 “오빠”하는 순간 예스, 세리머니를 하고, “삼촌”하면 집에 간다며 교실을 뛰쳐나갔다. 오빠, 삼촌, 오빠, 삼촌 하다가 한 아이를 한참 주시하던 나림이 입에서 나온 말은 “코끼리”였다. 아이들은 자지러졌고 코끼리는 가방을 쌌다. 그다음부터 나림이가 올라오면 코끼리는 집에 간다고, 엄마한테 이를 거라고 했다. 오빠들은 애가 참 똑똑하네요, 하고 삼촌들은 나림이를 노려봤다.
뭐든 엄마와 함께 하는 걸 좋아하던 아이는 뭐든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방문을 닫고서야 안정감을 느끼고, 엄마가 잠든 후에 활동하기를 선호한다.
“엄마 언제 와?”
밤 11시까지 수업해야 하는데 나미미가 이렇게 물으면 나는 아직 덜 끝났어, 먼저 자,라고 했고 가슴에 찌르르 통증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엄마 언제 와?”
15살 나림이는 엄마가 늦을수록 좋긴 한데, 들어오는 시간을 정확히 알아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에 묻는다고 했다.
5살 나미미는 괜찮지만, 15살 나미미는 징그럽다는 걸 아는데도 엄마는 가끔 5살 나미미가 보고 싶다. 통통한 다리로 “좋아”하고 앞장서 가던 모습, 세면대에 의자를 받치고 세수하던 모습, 혼자 목욕하겠다면서 머리에 거품 가득 묻히고 나와 “다했어”라고 외치던 모습. 집 여기저기 남아있는 너의 모습이 그리워서 눈물이 찔끔나기도 해. 너는 뭘 또 그렇게까지,라고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