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험 끝나는 꿈 꿨다?”
아침밥을 먹으며 초밥이가 말했다.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니 사는 낙이 없다고도 했다.
“이번 시험은 공부하지 말고 쳐보면 어때? 시험을 해보는 거지.”
“싫은데.”
“앞으로 많은 시험을 볼 텐데 한 번쯤 그래 보는 것도 괜찮잖아. 말도 마. 엄마도 처음으로 출판사랑 계약한 글 아직 시작도 못했어.”
“미친.”
(‘뭐야? 왜 그래?’로 해석했다)
“삼 년 전에 쓴 거라 다 뜯어고쳐야겠더라고. 재미도 없고 말도 안 되고. 읽다 보면 답답해서 놔두고 다른 글을 쓰고 있다니까. 그 많은 기말고사를 친 엄마도 이 모양인데 너한테 ‘계획 세워서 딱딱 못하겠니?’라는 말은 못 하겠다. 근데 이슬아 작가 있잖아. 이 사람은 6개월 동안 매일 마감했잖아. 쓰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 결국 익숙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나 봐.”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다시 읽는데 작가의 현재, 즉 최근 출간한 <가녀장의 시대>를 오게 한 증거를 보는 기분이었다. 4년 전 에세이 쓰기 모임에서 배지영 작가가 추천해서 읽었을 때 발견하지 못한 문장이 가득했다.
모두가 서로를 한 번씩 포옹했다. 각자와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쩌면 한마디도 못했다는 걸 각자를 껴안을 때에야 알았다. 여섯 명이 동시에 만나는 건 이렇게나 버거운 일이었다. 한국식 유흥의 허무함을 안고 모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한국식 유흥의 허무함”을 말하는 이십대라니. 이슬아 작가는 끊임없이 자기 객관화와 탐구하는 사람이었다. 희망, 용기, 사랑 같은 너무 커서 와닿지 않는 단어보다 싱싱한 언어를 생산했다. 흡연, 연애, 누드모델로 돈을 버는 이야기를 하는 솔직하고 자유로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엄격한 절제와 단련을 하는 사람의 기록이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서 월세를, <가녀장의 시대>에서는 자가를 살고 있지만 고정지출과 마감을 걱정하는 건 같았다. 지금의 문제가 해결되어도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는 인생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끝난 후에 뿌듯함이 남는 일을 반복하며 각자의 기예를 키워가는 일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루프시술을 하고 산부인과 의사에게 책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이슬아 작가다. 남에게 하나의 단면으로 규정되는 것이 두려워 내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을 이슬아 작가는 끝까지 놓지 않고 이야기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자 벌이는 치기 어린 시도조차 허용하는 게 인생이고 이를 통해 알아갈 수밖에 없다는 인정, 부정과 죄책감으로 덮어버리기보다 기록하고 발견해서 지도를 만들어가는 사람.
무엇보다 자정 전에 구독자에게 글을 보내고 아침에 메일로 피드백을 받는 일을 6개월간 하고 나니 무심하고 담담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어떤 칭찬과 비난도 오늘 써야 할 글의 부담보다 크지 않고, 지난 글은 잊어버리고 오늘치 글에 집중해야 하는, 그건 오롯이 혼자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내가 나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마누스 출판사 정가영 대표는 인용을 많이 하지 않기를 당부했고, 나도 다른 작가의 글에 기대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어쩔 수없이 하게 될 때도 있다. 특히 이런 문장은.
독자가 건네는 말에 쉽게 행복해지거나 쉽게 불행해지지 않도록 나는 더 튼튼해지고 싶다. 나약하지 않아야 자신에게 엄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휘청거리면서도 좋은 균형 감각으로 중심을 찾으며 남과 나 사이를 오래 걷고 싶다.
내가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를 연민도 자만도 없이 바라보고 끝난 뒤에 뿌듯함이 남는 일을 오래도록 반복하고 싶다.
“이슬아 작가는 출판사를 차려서 부모를 직원으로 채용했잖아.”
“멋지네.”
딸을 수평적 관계에 놓고,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에 집중하는 복희님을 나는 벤치마킹하고 싶다. 구멍 난 양말을 신고 형제가 많은 친구라고 해서 모래시계를 훔친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엄마, 어떤 순간에도 마음은 가난하지 않은 엄마, 내 삶을 부지런히 돌보고 기쁨을 찾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동시에 나의 모친 이찬이 여사도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내가 이슬아 작가 같은 딸이 되어야겠다고도 마음먹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나보다 탁월한 초밥이가 이슬아가 되는 게 빠를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