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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별로 안 망했어

by 김준정

아침에 눈 떠보니 7시 50분. 중간에 깨서 시계를 봤을 때는 5시였는데 어떻게 된 거지? 거실로 나가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나 아침 뭐 먹어?”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초밥이의 도전적인 말투에 순간 멈칫했다.


“1번 사과, 2번 오렌지 주스, 3번 고구마 뭐 먹을래?”
“사과.”

“아, 어제저녁에 먹었던 순두부찌개 있었네. 먹을래? 아님 밥 볶아주까?”

“그냥 사과 먹을래.”

초밥이는 사과 한쪽을 먹고 학교에 갔다. 오늘은 기말고사 첫날이다.

아침밥을 어쩌다 못해준 걸로 (비난한 건 아니지만) 부정적인 기운을 받았더니 억울했다. 나는 초밥이가 아침에 못 일어나면 1차 방문 열고 일어나라고 한 뒤 방문을 닫는다. 5분쯤 기다렸다가 2차 일어나라고 하고 방문을 닫는다. 3차까지 그렇게 한다. 함부로 불을 켠다거나 문을 열어놓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 의해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을 느끼느니 지각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미는 이렇게 눈치 보는데 내가 볼 때 녀석은 무법자 수준이다. 시험기간에는 더하다. 고구마 껍질을 식탁과 책상에 소복이 올려놓아서 내가 '고구마 무법자'라고 이름 붙여줬다.


“두 시간 공부하고 자. 12시까지 자고 새벽에 공부하면 몸의 리듬도 깨지잖아. 지금 네 얼굴 너무 피곤해 보여. 피가 끓는다고 했던 사람과 동일 인물 맞아?”

“내가 알아서 할게.”

어떤 상황에도 통하는 만사통치어, ‘내가 알아서 할게’



학교 축제가 있던 날, 새벽 6시에 곱게 화장하는 초밥이를 보고 내가 말했다.

“해야 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네가 좋아.”

“엄마, 피가 끓는 기분이야.”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게 아득한 옛날 같다.


반대항 춤, 학교 임원 춤, 장기자랑 춤, 방송부, 가능한 모든 무대에 나가느라 초밥이는 춤 연습을 그렇게도 많이 했다. 반대항곡에 대형을 짜고 어떤 부분이 밋밋하니까 두 명이 교차해서 덤블링을 하자, 같은 의견을 친구들과 모으고 연습하고 공연하는 과정에서 함께 하는 즐거움은 물론 공부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성적이 다가 아니라고 초밥이한테 말하고 싶은데 학교 축제는 일 년에 한 번이고 정기고사는 네 번, 축제는 하루이고 시험기간은 삼 일이다. 앞으로 성적에 대한 압박은 커질 텐데 성적이 자기를 증명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뿐 아니라 많은 부모들도 공부가 빠진 공백을 무엇으로 채워할지 몰라서, 공부 때문에 아이가 열등감을 가질까 봐 공부라도 하기를 바란다.


“친구들은 플롯, 댄스를 지금 하고 있는데 자기는 패션디자인학과를 가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답답하데요. 이럴 때 아이한테 뭐라고 해줘야 할까요?”

독서모임을 하는 지인이 내게 한 질문이다.


성적을 유지하느라 하고 싶은 일을 참아왔는데 앞으로도 그래야 할 만큼 공부가 가치 있는 건지 회의감이 생겨 답답한 마음을 부모가 알아주는 일이 우선이겠다.


쓸모 있는 일만 하는 건 아니다. 아무 데도 쓸모없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빵 굽기나 수집 같은 일은 고유한 나를 만들고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필요한 일만 하는 삶은 무미건조할 뿐이다.


“시험 치지 않으면 공부를 할 것 같아?”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의외로 대다수가 공부를 할 것 같다고 답한다. 공부가 나한테 도움이 된다는 건 학생들도 알지만 시험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싫어할 뿐이다.

학교 공부는 다양한 분야의 바구니를 만드는 일이다. 살아가면서 바구니에 내용을 채워 간다. 혹은 커피 맛을 보는 것과 같다. 커피를 접해본 사람은 커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대화할 수 있는 것처럼 교과 공부는 상식을 쌓는 일이다.


당장은 성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친구들이 부러울 수 있지만 대학입시를 놓고 보면 예체능은 입학 정원이 적어 더 큰 경쟁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공부하는 게 유리하다기보다 자녀가 성적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공부의 효용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겠다. 플롯, 댄스 같은 예술이야말로 공부를 통해 세상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하고, 그 바탕 위에 피어난 작품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느림보다, 천천히 간다, 반보씩만 간다, 멈춰있어도 힘든 건 마찬가지니까 아주 조금씩만 움직여보자.


등산하면서 힘들 때 내가 하는 주문이다. 딱한 얼굴로 공부하러 방에 들어간 초밥이한테 이렇게 문자를 보내려다가 그만뒀다. 이건 나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초밥이도 자기의 경험 안에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겠지. 내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건 아침밥 정도. 아침에 하려고 했던 샌드위치 속을 만들었다.


시험을 치고 집에 돌아온 초밥이가 큰소리로 말했다.


“별로 안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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