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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y 05. 2023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

 밥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시험을 잘 보라는 응원문자를 자기한테 보내주면 아이들에게 간식과 함께 전해주는 깜짝 이벤트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신선한 아이디어라니. 나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문자를 썼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

언젠가 네가 듣기 좋다고 했던 말이야. 네가 몇 점이든 몇 등이든 엄마는 상관없어. 엄마가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네가 괜찮은 것처럼 엄마도 그래. 사랑해.     


일주일 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간식과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부모님이 보낸 글을 읽고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중간고사 점수는 잊어버려도 이 기억은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나는 우는 아이들 중에 초밥이도 있었나 하는 기대로 초밥이한테 물었다.   

  

“엄마 메시지 보고 울었어?”
“울컥했는데 울지는 않았어. 근데 어떤 애가 엄마 거 보더니 이상하다고 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어.”   

  

내가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된다고 한 이유는 이 말을 떠올릴 때의 상황 때문이다. 이런 말이 필요할 때는 뭔가 자신 없고, 해도 안될 것 같아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아닐까? 이 일을 하기에 나는 모자란 것 같아서 도망가고 싶을 때, ‘그래,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 경험이라도 되겠지’하면 조금쯤 힘이 생기지 않을까.     


의욕이 넘칠 때는 사실 응원이 필요 없다. 힘내,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파이팅, 이런 말을 들으면  힘이 나지 않고, 할 수 없을 것 같고, 포기하고 싶고, 노파이팅 되는 이유는 성공을 가정한 말이기 때문이다. 듣는 순간 결과에 대한 부담이 커져서 마음이 쪼그라든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부풀게 하는 응원이라면 ‘실패해도 괜찮다’는 뜻을 가진 말이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 <머니볼>에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메이저리그 구단에 거액을 받고 입단하는 빌리가 나온다. 하지만 빌리는 선수시절 내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이른 은퇴를 하고 만다. 이후 선수로 소속되었던 구단의 실무를 하는 직원이 되지만  경기를 관람하지 못한다. 나는 그가 고교시절에 경험하지 못했던 패배를 메이저리그의 냉정한 세계에서 겪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단주가 된 빌리는 한 통계전문가를 만나게 되고 연봉이 높은 스타 선수가 아닌, 승리를 위한 확률로 선수단을 구성해서 20연승을 하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빌리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우고도 마지막 경기에서 졌다며 이런 말로 자책한다.     


“난 패배가 극복이 안 돼. 절대로.”     


지지 않기 위해 안감힘을 쓰는 게 아니라 어쩌다 찾아오는 승리에 기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승패에 연연하면 그 사람은 결국 지게 되어있다. 나보다 탁월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고 남보다 앞서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자신이 소모 돼버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빌리의 딸이 부르는 '더쇼'로 끝이 난다.     


그냥 쇼를 즐겨요.

아빠는 루저야.

아빠는 루저야. 아빠는 루저야.

그냥 쇼를 즐겨요.     


나는 가사를 이렇게 해석했다.     


어차피 나는 루저다. 누구나 루저다. 그냥 즐기자. 루저가 되지 않으려고 할수록 쇼를 즐길 수 없다. 실패는 인생이라는 극의 입장권과 같다. 실패라는 입장권을 가지고 즐겨라.     


루저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살면서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하지 않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실패를 통해 이전에 몰랐던 것을 발견하고 세계가 넓어진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부럽지만은 않을 거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이 되겠다고 생각하면 내가 본 그럴듯한 사람의 이미지에 나를 맞춰갈 것 같아서다. 바깥에 있는 목표보다 내 안에 목표를 두고 나를 만들어가길, 그래서 점점 내가 되길. 그 사람이 승리자에 가까운 모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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