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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28. 2023

다이어트라는 숙제

쑥은 다른 작물보다 먼저 쑥 나온다고 해서 쑥이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30년 동안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불모지에 처음 자란 식물인 만큼 쑥에는 강한 생명력이 있어서 먹으면 기운을 북돋아준다. (나의 유튜브 요리 선생님 윤이련 선생님의 말씀)   

   

쑥을 1,500원을 주고 사서 세 번 끓였다. 윤선생님이 쌀뜨물이 없으면 찹쌀가루를 한 숟가락 넣으라고 했다. 나는 찹쌀가루의 부재로 부침가루를 넣었지만, 그런대로 톱톱한 맛이 났다.     


“나 오늘 아침 안 먹는다고 했다.”

내가 식탁에 수저를 놓는데 초밥이가 말했다.

“유부초밥 만들었어. 다이어트식으로 두부 넣어서. 몇 개만 먹으면 어때?”
“안돼.”
“토마토 갈아주까? 그건 괜찮지?”

“안돼.”


신체검사가 있다고 어제부터 안 먹는다고 했는데 나는 깜빡하고 돈가스를 튀기고 유부초밥, 쑥국에다 콩나물무침까지 했다. 초밥이가 안 먹을 줄 알았으면 끓이고 지지지 않았을 텐데.    

  

아니 잘됐다. 덕분에 잘 먹네 뭐. 유부초밥 하나를 입에 넣고 쑥국을 떠먹으니 유부초밥 조미액의 아이 같은 맛을 어른 같은 쑥이 품어주었다. 쑥밭에서 밥알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을 때, 칙칙, 초밥이가 향수 공격을 해왔다.     


“어, 이거 뭐야, 밥 먹는데 와서 왜 이래?”

“미안.”

“일부러 그랬지?”

“아냐.”

성형미인 같은 향수가 쑥향을 흐려놓았다.    

아이 같은 유부초밥과 어른 같은 쑥국

 

초밥이 이름으로 택배가 왔는데, 손바닥만 해서 나는 무슨 손수건을 샀나 하고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초밥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어, 왔네”하면서 뜯어보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는 원피스가 들어있었다. 더 놀라운 건 마감처리도 어설픈 옷이 초밥이가 입는 순간 화사하게 피어난  것. 그 마술 같은 모습에 이끌려 “나도 입어볼래”가 내 입에서 나와버렸다.      


몸이 들어가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거울을 보지 말아야 했건만, 나는 초밥이가 입은 모습을 머릿속에 장착한 채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초밥이와 전혀 다른 핏과 오백 년은 산 것 같은 지친 얼굴은 화사한 원피스와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극심한 부조화가 무섭기도 했다.     


“무섭지?”
“윽. 늘어나. 벗어.”
 

 



다이어트라는 건 모든 중년에게 숙제 같은 것이 아닐까. (지친 얼굴은 어쩔 수 없으니까) 과거 어떤 체형이었든 중년이 되면 모두 비슷한 체형으로 수렴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많이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질 같은 건 더 이상 없다. 많이 먹지 않아도 살찌는 몸으로 대동단결한다.     


나는 주 1회 8시간에서 10시간 등산, 주 2회 요가, 주 3회 1시간 이상 걷기를 하는 사람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래도 배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세끼 밥을 먹었을 뿐인데 왜 이런 무거운 숙제를 받아야 하는지 (내가 이런 하소연을 하면 “엄마는 많이 먹잖아”하는 초밥이의 말이 날아든다) 나로서는 억울할 따름이다.    

 

역시 식단이다. 운동을 아무리 해도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면 건강해질 뿐이다. 외모는 이제 포기하자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몸을 사랑하자고, 외모를 평가하는 문화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아무리 그래봤자 소심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군고구마 1개, 미니양배추 10알, 오렌지 반 개, 사과 반 개, 닭가슴살 100g, 요거트 한 컵, 견과류 한 줌’      


가수 비의 식단 되겠다. 한 끼 식사로 적은 양은 아니지만, 엄청난 운동량을 감안해야 한다. 신곡 발표도 하지 않고 방송 출연할 일도 없는 내가 군고구마, 양배추, 닭가슴살만 먹으면 우울해진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양배추밥, 두부밥, 양배추두부밥이다.    


제철나물, 찌개등 각종 반찬에다 밥만 양배추와 두부를 섞어 먹는 거다. 현미밥, 귀리밥도 먹어봤지만, 포만감이 크고 칼로리가 낮은 건 양배추밥이 최고다. 양배추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양배추맛을 느끼기 전에 찌개 국물을 푹 떠먹으면 된다.      


나는 이틀에 한번 장을 보고, 매일 새로운 반찬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콩나물을 무쳐서 반찬통에 담고 깨소금 솔솔 뿌려서 뚜껑을 닫으면 잘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아침에 반찬을 만들어 아이와 먹고 오후에 산책을 다녀와서 혼자 점심을 먹는다. 1시간 30분쯤 산을 타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생각하면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다. 매일 다른 요리로 변화를 주는 기쁨을 누리면서 숙제도 하기 위해 양배추밥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내일도 모레도 해야 하는 숙제라면 참는 기분이 들지 않아야 한다. 양배추밥은 푹푹 먹을 수 있어서 참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들지 않는다. 들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하지만....... 서글픈 건 왜인지 모르겠다. 

양배추두부볶음밥(쌀밥이 더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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