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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21. 2023

독립하게 해 줘서 고마워

네가 없었다면 알 수 없었을 마음

학부모참관수업을 신청했다. 평소라면 신청서에 ‘비희망’을 선택했겠지만, 내년에는 초밥이가 다른 도시에서 아빠와 살며 학교에 다닐 가능성이 있어서 초밥이가 학교에 있는 모습을 담아두고 싶다는 마음에 나는 ‘희망’ 칸에 동그라미를 쳤다.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일이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닥칠지 몰랐다. 아이가 없는 일상이 상상이 안되지만 대학에 가면 떨어져 지내게 될 텐데 삼 년 빨라진 것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초밥이 아버님도 아이가 열 살이 되고부터 함께 지내지 못했는데, 둘이 추억을 만드는 것도 좋겠지. 무엇보다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 있는 엄마아래서 자란 딸이 엄마에게 부채감을 가진다는 글을 읽고, 나는 아이에게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 얘기를 초밥이한테 했더니 초밥이가 부채감이 뭐냐고 물었다. 이제는 부채감이 뭔지 몰라서 슬펐다)  

   

한 집에 사는 건 올해가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초밥이가 아침에 뛰어나가는 모습,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밥은 안 먹고 화장만 하는 모습, 이런 평범한 일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않도록 지금부터 초밥이가 독립했다 치고 생활하자고 마음먹기도 했다.  


   



“참관수업 신청한 사람 엄마밖에 없어.”     


학부모 참관일 아침, 초밥이는 이렇게 알려주고 학교로 갔다. 학생들이 나를 참관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학교에서 보내온 문자대로 나는 11시 40분에 시작하는 수업에 맞춰 학교에 도착했다. 정문 쪽  운동장에 주차하라는 안내에 따라 주차하고 본관으로 들어갔다.    

  

학교 현관로비에 있는 교실배치도를 보고 3학년 5반에 찾아갔더니 교실은 비어있었다. 체육시간인가? 옆반에서 마이크로 하는 과학 수업을 들으며 나는 복도에 서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우리 반 학부모는 나밖에 없는 건 알겠는데, 옆반에 찾아온 학부모도 없었다. 5개 반이 있는 긴 복도에 나 홀로였다.      


띠리리리리리리리, 종이 울렸고 교실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복도로 나왔다. 걷는 아이들보다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싱싱한 생동감이 순식간에 복도에 가득 찼다. 그때 예인이와 태은이가 나를 보고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초밥이 어머니시죠? 저 누군지 아세요?”

“알지. 태은이잖아요.”

그러는 동안 초밥이네 조직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야, 초밥이 어디 갔어. 찾아봐.”

태은이가 지시했다.

“제 이름 아세요?”
“가현이, 지호.”

가현이는 장래희망이 개그우먼이다.

“가현이 엽사(엽기사진) 왜 이렇게 웃겨요. 초밥이가 보여줬는데 나는 무슨 가면 쓴 줄 알았잖아요. 가현이 개그우먼 되면 무조건 성공할 거예요. 지금 당장 유튜버로 나서도 구독자 100만 확정이에요.”

맞아요, 맞아요, 하면서 조직원들은 까르르 웃었다.     


그때 초밥이가 나타났다.

“왜 애들한테 둘러싸여 있어?”
“몰라. 애들이 막 반겨줬어. 근데 왜 엄마들은 아무도 없어?”

“잠깐 있어봐.”

초밥이는 나를 데리고 연구실 팻말이 있는 교실로 갔다. 나는 그 앞에서 기다렸고 초밥이가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가 담임선생님과 함께 나왔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담임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2, 3교시가 공개수업이어서 다른 어머니들은 보고 이제 가셨어요.”

“그래요? 학교에서 보내온 문자에는 11시 40분부터 1시까지라고 되어있어서 저는 그 시간에 맞춰서 왔는데, 아니었나 봐요?”

그때는 4교시를 앞둔 쉬는 시간이었다.
“어머니, 잠시만요.”     

선생님은 연구실에 들어가서 다른 선생님한테 물어보더니 말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1학년 학부모님한테 보낸 문자가 어머니한테 잘못 갔나 봐요. 이왕 오셨으니까 4교시는 제 수업이라 공개수업 준비는 안 했지만, 보고 가도 되세요.”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 반 학부모 중에 저만 와서 학생들이 저를 참관할 것 같아 부담스러웠는데 잘 되었습니다. 선생님 만나 봬서 반가웠습니다.”
 

내 말에 선생님의 얼굴이 밝아졌고, 옆에서 내가 말실수라도 할까 봐 감시하던 초밥이도 함께 웃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나 잘했지.”
“어.”     


며칠 후 같은 학교 학부모이기도 한 툰자작가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2, 3교시가 참관시간이었고, 4교시는 학부모 교육시간이었다. 학교에서 보낸 문자는 학부모 교육 시간을 안내한 거였다. 신청서에 이 모든 내용이 정확히 나와 있었는데 내가 확인하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뱃속에 너를 품었을 때부터 네가 세상에 나와 지금까지 우리는 아주 가까이 있었어. 한 사람과 그토록 깊은 친밀감, 나와 분리되지 않는 감정을 느낀 건 특별한 경험이었어. 네가 아주 어렸을 때는 책임감 때문에 무섭기도 했어. 너한테 미안해서 울기도 많이 했지. 뭐가 그렇게 미안했을까. 엄마가 되기에는 내가 한참 부족하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좋은 엄마는 나 같은 모습은 아닐 것 같았어. 너한테 주고 싶은 마음은 한계가 없는데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 그저 미안했던 것 같아. 나도 뭔지 몰랐던 이 힘겨운 마음을 너를 통해 알았어. 더 주지 못해 애타는 마음을 말이야.     


사람은 부모의 고마움을 알 때 독립하는 것 같아. 나는 너를 키우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독립한 것 같아. 원망하고 서운했던 마음이 너를 통해 고마움으로 바뀌고 너와의 일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비춰보였어. 내가 너였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을 떠올렸어. 네가 없었다면 알 수 없었을 마음이지. 그래서 너한테 고마워.      


참관수업은 이걸로 마지막이고, 이제 나란히 함께 가는 길이 우리 앞에 펼쳐지겠지. 너무 가까워서 보지 못한 우리의 새로운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엄마는 벌써부터 기대된다. 


머리를 파돌돌이처럼 마는 것도 내년에는 보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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