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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r 19. 2024

아프지만 뜨거운 상상

연재를 마치며

“만약 내가 4, 5등급으로 졸업하면 어떨 것 같아?”     


초밥이가 이런 질문을 한 곳은 서점. 한 시간 반에 걸쳐 문제집을 골라온 초밥이 얼굴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 무슨 놈의 문제집이 등에 짊어져야 할 만큼 크고 무거웠다.    

  

“왜? 어중간한 직업을 갖고 어중간하게 살게 될까 봐? 아무 노력도 안 하면 평균이 되나? 평균정도로 노력했다면 평균정도 인정받고 평균정도로 돈을 벌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안 되는 사회가 잘못된 거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초밥이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얘는 왜 물어봐놓고 안 듣는 걸까. 


나는 초밥이 성적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저 풀 죽은 얼굴로 고등학교 3년을 보낼까 봐 그게 걱정이 되었다. 이런 얘기를 지인한테 했더니 지인이 말했다.     


“답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닐 거야. 혼잣말 같은 거겠지. 보통은 엄마한테 그런 말 못 하는데 초밥이는 엄마와 걱정을 나눌 수 있어서 힘이 되겠다.”     


답을 바라지 않는 말이라, 그런가? 문득 초밥이와 노고단을 갔던 일이 떠올랐다.     


나: 오래 쉬면 안 돼. 어서 가자.

초밥: 왜 오래 쉬면 안 되는데!    


초밥이는 올라가는 내내 투덜거렸다. 노고단 고개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에 엄청난 바람이 불어서 몸이 태극기도 아닌데 펄럭거렸다. 만에 하나 중심을 잃으면 난간이 없는 쪽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뒤에 오는 초밥이가 걱정이 되어서 얼마쯤 가다가 멈춰 서서 몸을 가누며 기다리는데 녀석은 늦어도 너무 늦게 오는 거다.     


나: 빨리 와!     


소리를 빽 질렀다. 바람소리에 묻히지 않으려면 크게 말해야 하기도 했지만, 강풍에 두들겨 맞다 보니 악에 받치기도 했다.     


초밥: 언제는 천천히 걸으라며!     


악에 받치기는 녀석도 마찬가지인지 큰소리다. 오르막에서 속도와 보폭을 줄이라고 했지. 지금 몸이 날아가려고 하는 판에 빨리 통과해야지 그 바람을 다 맞고 오냐. 어이구.   

  

나: 줄을 잡아! 줄!


이런 강풍을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녀석이 불안해서 나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어찌어찌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데 초밥이가 또 멈추길래 뭐 하나 봤더니 우의 주머니에서 벙어리장갑을 꺼내서 끼는 게 아닌가. "뭘 꾸물거려!" 버럭 하는 고함이 피식하는 웃음으로 바뀌었다. 저도 살겠다고 장갑 두 개를 끼는 녀석이 가상했다.




지금이 초밥이한테는 노고단 가는 길 같은 게 아닐까. 상상초월의 강풍, 장갑 하나로 부족한 추위를 처음 경험하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피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느라 툴툴거리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오래 쉬면 한기가 든다는 것과 오르막에서는 천천히 올라야 지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지 않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왜 오래 쉬면 안 되는데요!"


이건 내가 희남삼촌한테 자주 했던 말이다. 얼마 쉬지도 않았는데 삼촌이 배낭을 메라고 하면 그렇게 야속했다. 그런데 이 말이 초밥이 입에서 흘러나와서 속으로 얼마나 뜨끔했나 모른다. 그래놓고 시치미를 뚝 뗐다. 


한 번은 내가  “또 오르막이에요?”라고 한 적이 있는데 삼촌이 호통을 친 적이 있다.


“그걸 산한테 그러면 어떡혀!” 


그 후로 이상하게 이 말이 자주 떠올랐다. '오르막이 나올 때마다 길을 탓하는 나'가 지금의 내 모습이고, 그동안 내가 힘들었던 이유라는 생각. 내가 넘어야 하는 건 산이 아니라 그런 나라는 것. 눈앞에 있는 산이 바뀔 리 없으니 나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 아, 또 글이 산으로 갔나. 에라 모르겠다. 밀어붙여보자. 초밥이도 언젠가 비겁한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올까. 지금의 나처럼 뼈아픈 눈물을 흘리게 될까. 아프지만 뜨거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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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간의 아침밥> 연재를 30화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글을 쓰면서 독자님들의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외롭고 서운한 마음을 털어낼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독자님들 덕분에 건강하게 초밥이를 보내고 저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음을 담아 새로운 연재를 기획했어요. 다음 주부터 발행할게요. 독자님들 다음 연재에서 반갑게 만나겠습니다.


산에서의 아침식사(맞은편에 희남삼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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