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간의 아침밥> 에필로그
다음은 어버이날이자 초밥이 생일에 초밥이가 준 편지다.
엄마 안녕. 부모님께 편지 쓰라고 편지지 한 장 줬는데 엄마한테 써. ㅋㅋ
항상 엄마 만나서 얘기할 때, 전화할 때 엄마가 해주는 말 하나하나가 나한테 정말 큰 힘이 되고 영향이 커. 너무 우울하고 혼란스러운데 엄마를 떠올리거나 엄마랑 전화하면 생각이 정리돼.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 중학교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매일이 행복해서 몰랐어. 지금은 엄마랑 떨어져 있어서 그런 걸 수도. ㅋㅋ 그래서 요즘 엄마랑 같이 있을 때마다 ‘아, 너무 소중하다. 잘 기억해 놔야지, 잘 느껴놔야지’라고 생각해. 친구들이랑 있으면 재미있는데 엄마랑 있을 땐 행복해. 옛날엔 이런 말 절대 못하는데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나이 들어서 그런가? 그냥 술술 나오네. (물론 편지로만) 그런데 엄마가 왜 자꾸 다른 엄마들과 다른지, 더 좋은 엄마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어. 그냥 난 너무 당연하니까 일일이 말하지 않은 거고 속으로만 감탄해. 엄마랑 이야기하다 보면 아,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이렇게 깊게 생각할 수 있구나,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얕지? 하고 엄마의 지혜와 현명함??ㅋㅋ에 감탄하고 뜨끔할 때가 진짜 많아. (엄마가 나보다 30년을 더 살아본 탓도 있겠지만) 나도 나중에 자식한테 꼭 엄마처럼 교육할 거야. 금쪽이한테 제보할 필요 없이 바로 내 옆에 오은영 박사가 있어서 너무 좋당. 편지 중간중간에 눈물 자국 있어. 두 눈 치켜뜨고 봐봐. 우리 반 28명 중 나만 울었고, 내가 제일 많이 썼어. 크. 엄마 딸로 태어나서 너무너무 좋아. 엄마 딸이 아니었으면 지금만큼 행복할 수 없었을 거야. 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를 제일 사랑해. 고마워.
편지를 처음 받았을 때도 울었지만, 편지를 자판을 치는 도중에도 눈물이 흘렀다. 함께 있을 땐 실감하지 못하다가 떨어져 있으니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토록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고, 내가 느끼는 걸 초밥이도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왔다. 한편으로 우리가 특별한 마음을 함께 쌓아 올렸다는 사실에 벅차기도 했다. 이건 무언가 잃었다는 감정이 아니었다.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지난 시간을 우리가 의미 있게 잘 보내왔음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반성하게 하는 대목도 있었다.
“엄마가 왜 자꾸 다른 엄마들과 다른지, 더 좋은 엄마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어.”
왜 그랬을까. 나는 뭘 확인하려고 했을까.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 옆에 있는 초밥이한테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 잘하고 있지? 엄마 괜찮지? 나를 내가 믿을 수가 없어서 자꾸만 물었던 것 같다. 우리 잘하고 있지? 우리 괜찮은 거지? 그걸 묻고 싶었다. 초밥이 말고는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우리에 대해서 초밥이 만큼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초밥이만 괜찮다면 나는 괜찮으니까, 우리는 괜찮으니까.
이 편지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엄마, 나는 괜찮아. 우리 괜찮으니까 의심하지 않아도 돼. 엄마가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우리는 불행하지 않았을 거야. 한 가지 선택으로 불행할 수 없어. 다른 행복이 있고, 우리는 그걸 볼 수 있기만 하면 돼. 작고 여렸던 우리 딸이 어느새 자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 나는 세상에 두 가지 길만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행복과 불행, 이혼 가정과 정상 가정. 그리고 불행과 이혼가정을 연결시켰던 것 같다. 하지만 초밥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힘이 셌다. 그리고 나한테 가르쳐 주었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믿으면 다 괜찮을 거라고 말이다.
두 번째 반성.
“부모님께 편지 쓰라고 편지지 한 장 줬는데 엄마한테 써.”
부모님한테 편지를 쓰라고 했는데 자기는 아빠가 아니라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는 말이었다. 이 사실을 알려주면 엄마가 좋아할 거라는 걸 알고 말이다. 법륜 스님이 “자식에게 이혼한 배우자의 욕을 하면 자식은 나쁜 사람의 핏줄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정하게 됩니다”라고 하는 걸 듣고 속으로 뜨끔했는데, 그보다 초밥이의 말이 나를 더 부끄럽게 했다.
그간 나는 전남편 얘기가 나오면 욕을 한 건 아니고 좀 비꼬았다고 하나, 냉소적으로 말해놓고 농담인 척했다. 수위가 높다 싶을 때는 곧바로 초밥이의 제재가 들어왔고, 그러면 나는 미안미안, 사과를 해놓고 다음에 또 해서 초밥이가 눈을 흘기고 그랬다. 나는 참 못나고 못난 인간이다.
초밥이가 아빠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전남편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전에는 내가 초밥이와 함께 사는 입장에서 이주에 한 번 만난 전남편 이야기를 들었다면, 지금은 가끔 만나는 입장에서 초밥이가 함께 사는 전남편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입장이 바뀌어서일까 이야기를 듣는 관점도 달라졌다.
초밥이 아버님은 수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먹을 때 수박물이 흐르는 것과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사람이 초밥이를 위해 수박을 떨어지지 않게 사 와서 큐브 모양으로 잘라 큰 통에 담아놓는다고 했다. 하루에 수박 반 통을 해치우는 초밥이의 속도에 맞추려면 이틀에 한 번 수박을 사다 나르고 껍질을 버려야 하는 수고를 알기에 초밥이한테 그 이야기를 들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하루는 전남편이 초밥이가 자주 사 먹는 뻥과자를 똑같은 걸로 다섯 봉지를 사 왔더란다. 그 뻥과자는 여러 브랜드의 편의점 중에서도 딱 한 곳에만 파는 것이었는데, 몇 군데를 뒤져서 사 왔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초밥이를 향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초밥이를 한 달 만에 만나서 겨우 하룻밤을 자고 데려다주고 오는 차 안에서 허전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생각났다. 그도 아이 하나로 세상이 꽉 찬 기분이었다가 한순간에 허허벌판에 서있는 기분이었겠구나. 그럴 때 뭐랄까. 동지애 비슷한 감정이 생겼다. 부부로서 나누어 가지지 못한 감정을 뒤늦게 아이를 통해 나누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런 모습으로 서있지만, 그래도 괜찮고 그것도 소중한 마음이었다.
초밥이와 그 사람은 많이 닮았다. (엽기적인 그녀 OST, I Believe가 흘러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초밥이는 전화를 하면 받지 않는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스터디카페, 학원, 노래방 어디를 가든 꼭 받는다. 아무리 바빠도 전화를 끊으라고 재촉하는 법이 없다. 정신없는데도 티를 안 내려고 할 걸 알기 때문에 초밥이가 등교하는 시간이나 바쁠 것 같을 때 나는 전화하는 걸 피한다.
그 사람도 그랬다. 직장에서 회의 중일 때, 회식 중일 때, 상사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꼭 전화를 받았다. 지금 상사와 이야기하는 중이니까 잠시 후에 전화를 걸게,라는 말을 차분하게 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괜히 미안했다.
그런데 나는 어땠나. 나는 어디로 이동하는 중이거나 사람들과 얘기하는 중일 때 좀 귀찮은 생각이 들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초밥이가 내 전화를 잘 받아주면 그 사람 생각이 났다. 초밥이가 나처럼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떨어져 있는데 걱정되고 서운했을 테니 말이다. 늦었지만 미안하고 고맙다.
초밥이가 쓴 편지는 반복해서 읽다 보니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알고 쓴 것 같다. 초밥이는 편지를 주고 나서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세상 쿨하지 못한 엄마는 “엄마 딸이 아니었으면 지금만큼 행복할 수 없었을 거야. 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를 제일 사랑해” 이걸 읽을 때마다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여기에 답장을 적어본다.
나는 괜찮아. 우리는 괜찮으니까 의심하지 않을게. 불안해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한 단계를 잘 지나왔으니 다음 단계도 잘해나갈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 우리가 늘 함께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