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등산을 하는 산우들은 나이가 60세 전후로 나보다 10세에서 15세 정도가 많다. 그분들이 어렸을 때는 집에 냉장고가 없어서 이웃과 음식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복날이나 동지 같은 날이 되면 큰 가마솥에 삼계탕, 팥죽을 끓여서 함께 모여 먹었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지금은 다수가 아파트에 살고 냉장고가 두 대씩 있는 집들도 많다. 나는 어쩌다 혼자 먹기에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면 가까이 사는 지인에게 갖다 줄까 하다가도, 공동현관문 벨을 누르고 열어달라고 하는 것이 방해를 하는 것 같아서 망설이게 된다.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고, 어울리는 일이 힘든 반면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온전히 혼자이기도 어렵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히라야마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버지와 여동생과 연락을 끊고 살고 있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이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점심을 먹는 산사에서 만나는 여성에게 미소를 담아 인사를 하고, 공중화장실 청소 일을 함께 하는 젊은 동료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선선히 빌려주었다.
한 번은 히라야마가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그는 아이를 달래서 엄마를 찾아주지만, 아이를 찾은 여성은 히라야마의 손을 잡은 아이의 손을 물휴지로 닦더니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히라야마는 불쾌한 기색 없이 손을 흔드는 아이를 향해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
히라야마는 매일 가는 식당, 목욕탕의 주인과 손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웃과 직장동료와 느슨하지만 다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모습에서 나는 히라야마가 이웃과 직장 동료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덕분에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고마움, 그 고마움이 히라야마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았다.
이런 고마움을 나는 등산을 함께 하는 산우들에게 느꼈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힘이 다 빠져서 도착했는데 산우가 두고 간 황도통조림을 발견한 일, 물이 떨어졌는데 한 분이 선뜻 물을 한 병을 꺼내준 일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신기한 건 나한테 도움을 준 사람에게 되갚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도와주게 된다는 거다. 사람들과 주고받는 게 자연스러워지면서 내 안의 불안을 조금씩 줄어드는 걸 느꼈다. 함께 가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나를 얼마나 넉넉하고 여유롭게 해 주는지.
사람들과 뭔가를 나누는 일이 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고, OTT를 보고, 배달음식을 먹으면 결국 혼자가 된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기 위해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챙기는 것처럼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장을 보고 들어오는 길에 들른 세탁소 사장님에게 참외 두 개를 주고, 아침 일찍 반품 수거하러 오는 택배기사를 위해 음료수를 쇼핑백에 담아서 내놓는 일은 함께 살아가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내게 깃들도록 하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