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있는 이벤트의 기쁨
초밥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지났지만 오지 않고 대신 전화가 왔다.
“어머니 소녀 부탁이 있사옵니다.”
시작부터 불안했다.
“다음 주에 제가 수련회를 가지 않사옵니까? 그래서 친구들이 예은이 집에서 계획을 세운다는데 저만 빠지면 이제 또 제가 슬프고 하니 오늘 하루 예인이 집에서 자도록 허락해 주시면 어떠하온지요.”
“즉흥적인 외박이라... 이건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데.”
“엄마 예은이 알잖아. 전에도 잔 적 있고.”
“지금 어딘데?”
“아따맘마”
초밥, 예은, 지유는 학교 앞 분식집에서 수련회 이야기를 하다가 끌어 오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합숙하자는데 의견을 모은 것 같았다.
“엄마 잠깐만, 뭐라고? 진짜?”
옆에서 예은이가 전화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예은이에게 무슨 말을 전해 들은 초밥이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없던 걸로 해. 예은이 언니가 안된대. 집에 갈게.”
세 명이 동시에 결정권이 있는 사람에게 전화로 허락을 구하는 상황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그럼 친구들하고 우리 집에 와.”
나의 제안에 초밥이는 튀어 오를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 그래도 돼?”
“그래도 돼지.”
“엄마가 우리 집에 오래. 갈래? 좋아? 그래. 엄마 애들이랑 갈게!”
이십 분 후 삼인조가 들이닥쳤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어서 오세요. 지금쯤 실망하고 ‘안녕’하고 헤어졌을 텐데 이런 반전 너무 신나죠?”
“맞아요! 어머니 멋있어요. 성공한 ceo 같아요.”
“어이구,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돈없이도 이장이에요)”
예은이와 지유가 합창했고, 초밥이가 제재에 들어갔다.
“너네 왜 이렇게 하이텐션이야? 엄마 고마워. 이제 우리는 내 방으로 들어갈게.”
소녀들에게 존경의 눈빛을 받고 보니 오라고 할 수 있는 집이 있는 아줌마라서 뿌듯했다.
밤에는 치킨을 시켜서 소녀들과 둘러앉았다. 식탁에 늘 둘이 앉다가 오늘은 대가족 같았다.
“초밥이 우리 학교 얼굴 일빠예요. 몸매도 좋고요.”
예은이가 약간의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고자 나 기분 좋을만한 말을 꺼냈는데,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근데 외모는 노력한 게 아니잖아요.”
“무슨 소리야. 내가 열심히 운동하는 거 보고서 그래.”
초밥이가 발끈했다.
“그 영향이 적다는 말이지. 외모나 집안은 그 사람이 한 일이 아니고 배경 같은 거잖아. 그냥 그렇다고.”
“맞아요. 너 엄마한테 왜 그래.”
“그리고 외모 그거 잠깐이에요. 아줌마 나이 돼봐요. 다 비슷해져요.(이 포인트에서 소녀들은 격하게 공감을 표시했는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사람마다 풍기는 분위기가 중요하지.”
진지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자식만 예쁘다고 좋아하는 물색없는 엄마가 되기 싫었고, 아이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외모에 더 신경 쓰는 문화에 반기를 들기를 바랐다. 거쳐가는 과정이고 경험을 쌓아가는 중인 줄 알지만 나보다는 조금 빨리 분별력이 생겼으면 했다.
밤에 초밥이 방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엿들은 것 아님) 예은이가 고모가 이혼했는데, 이후로 두문불출해서 사촌들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저녁,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후 나는 초밥이 침대에 초밥이와 같이 누웠다.
“네 방 무슨 둥지 같다.”
“아늑하지? 내 방 좋아.”
지저분하다는 소리였는데 초밥이는 전지적 자기 시점으로 받아들였다.
“예은이가 아빠랑 무슨 얘기하냐고 물었어. 조심스럽게.”
예은이는 두 명의 언니가 있는 5인가족이다.
“뭐라고 했어?”
“너희들이랑 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 얘기한다고 했어. 내가 엄마하고는 친구처럼 지내는데, 떨어져 사는 아빠와의 관계는 어떤지 궁금한가 봐.”
“2인 가족의 삶이 낯설기도 하겠다. 과거에는 도박, 알코올 중독, 폭력, 외도 같은 심각한 문제로 이혼한 사람이 많았어. 성격차이나 웬만한 건 남의 눈을 의식해서 참고 살았지. 상대 배우자의 잘못으로 가정이 파탄 났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아서 이혼하면 불행하다는 선입견이 생긴 것 같아. 엄마도 내 일이 되기 전에는 그랬고.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사례가 많아질 거고, 선입견도 사라지겠지.”
아이가 나의 생각의 출처를 질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스스로 막연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나의 편견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그 시기가 나보다 조금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애들이 학교 가기 싫대. 학교에서 잘 놀던 애들이 혼자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놀랐어.”
삼인조가 우리 집에서 합숙했던 날, 초밥이는 전화를 하기 전에 감기 때문에 학원에 결석하겠다는 문자를 먼저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친구집에서 자겠다길래 내가 “다 계획적이었던 거냐”고 하니까, 초밥이는 아니라고 했다.
나도 안다. 학원을 가려고 했을 때는 분명 아팠던 몸이 친구랑 놀려고 하니까 거짓말처럼 나았다는 걸. 내가 학원을 가라고 한들 가서 공부가 될 리 없고 괜히 억울하기만 할 테니 나도 부질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결정권이 없고 강요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 무기력해진다는 걸 나도 경험해 봐서 잘 알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반전이 있는 이벤트는 일어나지 않았을 게 아닌가.
“점심시간에 남자애들한테 수련회에서 출 춤연습하자고 불렀더니 축구해야 된다고 처음에는 툴툴거렸는데 나중에는 가도 된다고 했는데도 연습 더하자고 하는 거 있지. 땀을 뚝뚝 흘리면서 동작을 맞출 때 너무 기분 좋아.”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안심이 된다. 초밥이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기쁨을 안다면 뭘 하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합숙한 다음날 아침 일어나 움직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열 시쯤 되자 한 명씩 일어나기 시작했고 내가 물었다.
“스파게티 만들어줄까요? 새우랑 오징어 넣고요.”
“아니, 괜찮아. 라면 사 와서 먹으면 돼.”
“우와, 맛있겠다.”
초밥이는 사양했지만, 손님은 왕이니까 예은이 말을 듣기로 했다. 스파게티를 완성하고 소녀들을 불렀다.
“골라봐요. 복불복이에요. 새우가 왕창 들어간 게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