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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Feb 20. 2024

그럴 수 있지 훈련

태호씨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일 안 와. 바빠. 안 와.”     


오늘도 태호씨가 이렇게 말하자 형규가 빈정거렸다.


“에이, 거짓말, 그러면서 내일 또 올 거면서.”


문 선생님이 대꾸했다.     


“태호씨가 하는 '내일 안 온다'는 말은 금요일에만 맞는 말이에요.”     


“그러면 태호씨 내일은 안 오니까 우리 오늘만 재미있게 놀아요.”

    

내가 이렇게 대충 말을 받고 가만 생각해 보니 현답이 아닌가. 내일은 또 오늘이 되고, 오늘만 재미있게 놀면 결국 매일이 재미있는 거니까. 아이들이 하는 말에서 지혜를 발견하는 것처럼 회원들에게서 의외의 소득을 얻을 때가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을 돌보는 유치원 교사는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발달장애가 있는 회원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몰랐던 보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지적연령이 4, 5세인 회원들이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팔짱을 끼고, 서로 자기 옆자리에 앉게 하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걸 보면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내가 뭘 해도 웃어주고 반응하는 23명의 회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지적연령이 4, 5세에서 9, 10세 수준의 회원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하는 것이 처음부터 자연스러웠던 건 아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 화장실에 가는 게 무섭다고 같이 가달라고 하거나 가위질을 못하겠다고 대신해 달라고 할 때 순간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럴 수 있지’가 되지 않았다. 회원들의 행동이 이상하고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함께 하는 시간이 늘면서 차츰 적응이 되었고, 4년이 지난 지금은 회원들이 하는 어린애 같은 말과 행동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는데서 조금 벗어난 거다. 요즘은 그 효과를 일상에서도 느끼고 있다.


중학교 2학년 과외수업을 할 때였다. 평행사변형은 대각선이 서로 이등분한다는 성질이 있어서 대각선이 10cm면 5cm로 나뉘고, 8cm는 4cm로 나뉜다고 하다가, 학생이 이렇게 물었다.


 “9cm일 때는 어떻게 해요?”

예전 같으면 어이가 없지만, 태연한 척하느라 애를 썼을텐데 이번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4.5cm라고 하면 돼요.”     

아무 동요 없이 이 말을 하는데 나만 아는 내 안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기분이었다.      


‘왜 이게 안되지?’     


더 이상 수업을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이 생각때문이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한 가지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게 된다. 다른 경험을 통해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아는 기회가 없다면 나의 시야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을 긍정하는 걸 바탕으로 수업을 하니까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고, 무엇보다 내 안이 평화로워졌다. 뒤늦게서야 나는, 나를 평화롭게 하는 일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거라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나에게 발달장애가 있는 회원들과의 봉사 시간은 ‘왜 이게 안되지?’에서 '그럴 있지'로 바꾸는 훈련이었다. 


나와 다르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 나와 별 차이가 없고 사는 건 비슷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면, 내가 하는 고민과 상실이 큰 것 같아도 멀리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 또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게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도 있겠다. 결국 나에게 일어난 일에도 ‘그럴 수 있지’가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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