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정 Aug 02. 2024

자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봉사를 합니다

추진장애인자립작업장 회원들과 미술활동과 산책을 하는 멘토링활동이 있는 날이었다. 회원들이 승합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준호가 보이지 않았다. 


나: 준호는 안 왔어요?

문선생님: 사고를 쳐가지고 지금 근신 중이에요. 저녁에 자전거를 몰래 타고 나갔다가 논두렁에 빠져서 다쳤어요.

나: 에고, 저런. 많이 다쳤어요?

문선생님: 팔꿈치 까진 것 말고는 괜찮아요. 그래도 규칙을 어겼으니까 일주일간 외부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어요.     


다음 멘토링 활동이 있던 날, 나는 준호가 왔는지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나: 자전거 타다가 다쳤다며. 괜찮아?

준호: 몰라요.

나: 이리 와봐.

준호: 나 안 해요.     


준호는 그러고는 나와 멀찌감치 떨어져서 걸었다. 회원들이 사진을 찍자고 불러도 오지 않고,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나는 전부터 준호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는 했다. 회원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무료해 보였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지적연령은 다양하지만 대다수가 5세에서 6세 정도다. 그에 비해 준호는 초등학교 4학년, 5학년쯤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른 회원들보다 높은 건 분명하다. 그러니 준호입장에서는 회원들과 노는 게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준호정도면 카페 같은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족 중에 도와줄만한 사람이 없나? 그러면 돈도 벌고, 지금은 자기 이름밖에 모르지만 한글도 다 떼고, 그런 다음 자격증을 따거나 대학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흠칫 놀랐다. 준호가 비장애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처럼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걸 준호가 원하는지, 그것이 준호에게 더 나은 삶인지 알지 못하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정작 준호를 힘들게 하는 건 그의 삶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고,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일지 모르는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런 시선으로 힘든 시간이 있었다. 8년 전 남편과 헤어질 때 가족과 친구들 앞에 어떻게 나서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위축이 되었다. 어쩌다 누구한테 걱정하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그 말이 고맙지 않고 동정받는 것 같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편견이 화살이 되어 나를 찔렀던 게 아닐까 하는. 나 스스로가 이혼을 상실과 실패로 여겼기 때문에 그런 처지가 된 나 자신을 참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러다 누가 툭 건드리면 상처가 되었던 게 아닐까. 전형적인 피해의식이었다. 이런 피해의식은 결국 나를 피폐하게 만들고, 남과도 멀어지게 할까 봐 두려웠다.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내 안에 있는 화살부터 없애야 하는 게 아닐까.   


발달장애인봉사를 어떤 목표나 결심을 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연언니가 오랫동안 장애인시설과 노인정에서 미술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설치미술가인 연언니한테 조언을 구하느라 자주 만났다. 자연스럽게 연언니가 하는 일을 알게 되었고 함께 하게 되었다. 별생각 없이 시작했지만, 지난 5년은 나한테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굳게 만든 시간이었다. 


나와 달라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 말로는 쉽지만, 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을 회원들과 내가 ‘아는 사이’가 되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는 건 누구나 다 비슷하고, 각자 다른 어려움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 서서히 내 안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걸 수용하지 못해서 긴 시간 동안 나는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부주의하게 판단하고, 그렇게 판단한 기준이 나를 아프게 했다.    


내가 존중받기를 바라면 남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은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준호를 만나는 시간은 훈련을 하는 시간이다. 준호는 나를 훈련을 시켜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내가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도록, 자의식으로 피폐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다시, 학교에 갑니다>는 송유정 작가가 교육자원봉사를 한 경험을 담은 책이다. 송유정 작가는 지난 5년간 학교에서 디베이트 토론 수업을 해왔다.     


재난 지원이나 청소, 방역 등의 일반 봉사는 해당 공간에 도착함과 동시에 시작되지만 교육자원봉사는 훨씬 전부터 많은 시간 동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책 속의 구절처럼, 학교로 이동해서 수업을 하는 것만 해도 오전 또는 오후 시간이 소요되는데, 주 1회 스터디까지 하려면 여간 부담되지 않을 것 같았다. 봉사 첫 해에는 67시간 수업을 했다고 한다. 67시간을 학기 중인 8개월로 나누면 월 8회, 주 2회 수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걸 2, 3회마다 새로운 학교에서 하려면 몸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에너지가 많이 소모될 것 같았다. 두 번째 해부터는 교육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함께 했다고 하지만, 직업이라고 해도 힘든 일정일 것 같았다.  


송유정 작가는 이토록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어가는 일을 왜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말로 전달하는 경험을 하기 바라는 마음, 비판적 사고와 연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 더불어 내 아이가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 나부터도 사려 깊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이 질문의 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한 가지만 이룰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세상은 긴밀하게 얽혀있어서 하나가 변하면 다른 것도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편견이 남은 물론이고 나를 아프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변화는 경험을 통해서만 일어나는지 모른다.

<다시, 학교에 갑니다> 송유정 작가
준호와 나, 서천군청 내에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만든 도자타일벽화 <동행서천>앞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