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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하고 뻔한 글

휴재공지

by 김준정

글쓰기의 효용 중 하나는 불편한 일에 대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낯선 감정을 느끼면 그냥 넘기지 않고 ‘이거 좋은 글감인데?’하고 메모하고 그 속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애를 쓸거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을 찾는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 일에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살다 보면 유쾌하지 못한 일을 겪어도 이유를 생각해볼 겨를 없이 지나치기 쉽다. 그러다 어느 날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처럼 막막해지고 만다. 집을 사고 아이가 크면 그때까지 참고 살다 보면 자유롭고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게 끝이라고? 이 상태로 계속 살아야 한다고? 감옥에 갇힌 것처럼 답답한 상태로 기대가 없는 날을 살 것 같았던 때가 내게 있었다.


크게 보이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일, 그 안을 자세히 보고 꺼내고 발견하기를 무수히 거듭해야만 나를 묶었던 올가미가 조금씩 풀려서 자유로워지는 게 아닐까. 그런 지난한 작업이 나를 느슨하게 풀어줘서 조금씩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게 아닐까.


글을 쓰는 목적이 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북 연재도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고 싶어서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덜 드는 소재의 글을 쓰는 나를 발견했다. 불쾌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일어서 뭐지 하고 쓰기 시작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아서, 글을 읽고 불편해할 사람이 있어서, 그 외 여러 가지 걸리는 부분 때문에 덮어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무해하고 뻔한 글을 발행했다.


(1) 무해하고 뻔한 글처럼 보이지만, (2) 그 속에 소중한 것을 품고 있는 글, (3) 읽고 나면 독자가 직접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글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다. 하지만 (1) 단계에서 그치는 글만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불편하지만 중요한 소재를 피하고 비슷한 글만 쓰는 것 같아서 이 주간 글을 발행하지 못했다.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해야겠다고 몇 번 마음을 먹었는데, 내가 쓰는 글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면 의욕도 급격히 떨어져서 하지 못했다.


나도 몇몇 작가의 연재를 읽고 있다. 연재일에 글이 없으면 실망하고 다음날 다시 들어가 본다. 글이 올라와있지 않으면 약간 실망하고 계속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걱정이 된다. 그러니 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그런 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분들께 미안하고 고맙다. 작가로서 책임감 있는 태도는 글과 함께 내가 키워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당분간 연재를 중단하고 이전에 썼던 글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정리하면서 소재 탐구도 해볼 생각입니다. 기다려주시면 더 참신한 소재로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무탈하게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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