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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 많이요

닭다리와 당면의 차이

by 김준정

할머니는 돼지고기를 못 드셨다. 좋아하지 않았는지 알레르기가 있었던 건지 모르지만 소고기를 자주 먹을 형편이 되지 않았던 우리 집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찜닭’을 시켜먹었다.

“당면 많이 넣어주세요.”

주문할 때 절대 빠트리지 않는 말이었다. 여섯 식구가 먹으려고 하면 부족해서일까? 까만 간장 국물을 베인 당면이 맛있기도 했다.


배달된 찜닭을 큰 냄비 두 개에 옮겨 담고 안방에 큰 상을 폈다. 밥과 반찬을 놓으면 이제 배분이 시작되었다. 다리 하나는 할머니, 또 하나는 아빠, 이제 두 개가 남았는데 작은 아버지집인 우리 집에서 대학을 다니는 사촌오빠에게 하나가 돌아가고, 마지막 하나는 오빠 차지가 되었다. 내 밥그릇 위에는 한번도 닭다리가 올라온 적이 없었다.


사실 나는 날개나 목이 더 맛있었다. 아니면 자작한 양념에 조린 양파나 감자를 밥과 함께 쓱쓱 비벼서 김치를 올려먹는 걸 더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 달도, 다음 달도 한번도 나를 챙겨주지 않자 왠지 쓸쓸한 마음이 생기면서 아빠가 “찜닭을 시켜먹자”고 하는 말이 더 이상 기쁘지 않았다. 아빠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막내인 내가 신나 하면서 전화를 하고 오빠와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부산을 떨어야 했는데 가슴 한쪽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쾌활한 척을 하며 서운하기는커녕 닭다리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시늉을 내는데 애를 썼다. 아마 준다고 했으면 “나는 원래 닭다리를 싫어한다”며 펄쩍 뛰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는 엄마 대신에 할머니가 오빠와 나를 돌봐주고 살림을 했다. 집안일은 할머니와 아빠가 의논해서 결정했고 엄마는 말이 없었다. 밤늦게 돌아와서 새벽에 나가는 엄마지만 어쩌다 집에 있는 날에도 쉬지 못했다. 엄마가 늘 피곤해 보였지만 아빠는 할머니가 우리 식구 때문에 고생한다며 미안해했다. 그래서 별식도 할머니가 좋아하는 메뉴로 정하는 게 당연했다. 오빠와 나도 우리를 키워주는 할머니한테 고마워하는 게 당연했고,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닭다리도 이런 당연한 것들 중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젊을 때 얼른 돈을 벌어서 기반을 잡게 도와주는 시어머니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지당했고, 수재소리를 듣는 큰집 조카가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자신이 도와주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 남매가 크는 것을 볼 수가 없고, 집안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남편은 어머니만 챙겼다. 엄마는 그 시절을 ‘남편과 자식을 뺏기고 돈 버는 기계’로 살았던 때라고 했다.


사촌오빠가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큰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매일같이 싸웠다. 서로를 원망하고 비난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상처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당연한 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닭다리를 달라고, 먹고 싶다고 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내 밥 위에도 닭다리가 올려졌을 것이고, 엄마의 텅 빈 가슴도 채워졌을지 모른다.


닭볶음탕을 만들면서 나도 모르게 당면을 많이 넣었다. 이제는 내 차지가 된 닭다리를 먹으며 예나 지금이나 당면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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