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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햇빛이 길게 내려온 부엌

by 김준정

시간의 파도에도 쓸려내려가지 않고 박혀있는 돌처럼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거기 그대로 있는 건 그 안에 진실이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진실이라는 걸 알기까지 왜 이토록 긴 시간이 필요한 걸까.


K와 나는 집안 형편, 남매인 것, 부모님이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것까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다른 것 하나는 어머니의 음식솜씨였다. 한 번은 K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에 놀러 갔다가 밥을 먹게 되었는데, 나는 꽃게가 들어간 감칠맛 나는 된장찌개와 통통하고 기름기가 많은 고등어를 먹고 놀랐다. 특별히 차린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먹는 반찬이었지만, 내가 집에서 먹어온 짜디짠 된장찌개와 젓갈이 되려고 하는 고등어와 차원이 달랐다. 특히 고등어의 재발견이었다. 그것이 노르웨이 고등어라는 건 한참 후에 알았다.


그의 집에서 밥을 먹고 난 이후로 나는 밖에서 데이트를 하다가도 밥은 그의 집에서 먹는 걸 좋아했다. 그런 나를 두고 그는 “너는 밥 때문에 나 만나냐?”라고 하기도 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날도 학원 근무를 마치고 나는 배고프다며 그의 집으로 갔다. 늦은 오후였고, 식탁이 있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부엌 바닥에 작은 상을 놓고 그 위에 반찬을 두었다. 우리는 상을 마주 보고 앉아서 밥을 먹었다. 그가 된장찌개 안에 있던 꽃게 살을 발라 내 밥 위에 올려주었을 때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늦은 오후의 햇빛이 길게 들어오는 부엌에서 작은 상을 펴놓고 밥을 먹는 이 장면을 언젠가 슬프게 떠올릴 것 같은... 그러자 느닷없이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K는 함께 쇼핑을 하러 가서 내가 바지를 입고 나오면 발밑에 구부리고 앉아서 바짓단을 접어주었던 사람이었다. 감동은 그런 작은 일에서 일어나고, 작은 감동이 이어지는 삶이 행복하다는 걸 그 시절에 나는 알지 못했다. 행복은 내가 알고 있는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고, 낯선 것일수록 행복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과 다른, 나에게 없는 것을 꿈꿨다. 사치와 거리가 먼 살림살이와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는데 보내는 그의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과 닮았고, 우리 집과 비슷한 곳이라면 나의 미래는 곧 엄마일 것 같았다.



*


영화 <시네마천국>은 어떤 길을 선택하든 후회가 남는다는 걸 보여준다. 시칠리아 작은 마을의 유일한 극장에서 일하는 중년의 알프레도와 10살 토토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친구가 된다. 영화는 토토가 처음 알프레도를 만났을 때처럼 중년이 된 모습에서 시작한다. 토토는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어머니의 전화로부터 알프레도가 죽었다는 비보를 듣는다. 그날 밤 토토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30년 전 일을 떠올린다.


“여기를 떠나라. 여기 머물러서는 안 돼. 지금은 일자리가 있고, 너를 필요로 하지만,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게 돼. 로마로 가라.”


알프레도는 성인이 된 토토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말한다. 첫사랑인 엘레나를 잃은 슬픔으로 토토는 떠날 결심을 한다. 알프레도는 토토를 배웅하는 기차역에서 전화도 편지도 하지 말고, 찾아오지도 말라고, 그리움이나 향수 따위 가지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건 알프레도가 삼십 년 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영화를 향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평생 안고 살아야 했던 사람의 회환이 담긴 말이었다.


알프레도의 바람대로 토토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토토는 알프레도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3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간다. 때마침 ‘시네마천국’ 영화관을 허물고 주차장이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시네마 천국’은 토토와 알프레도가 영화에 대한 사랑과 우정을 나눈 곳이다. 토토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극장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웃고 울었던 수많은 시간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극장과 함께 그 시간도 사라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고향에 남아 가족과 친구들 곁에서 평생 영사실에서 일을 한 알프레도, 대도시에서 영화감독이 된 토토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았지만,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는 건 같았다.



*


가끔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지금 K가 내 옆에 있다면 소중함을 알았을까 하는. 모르겠다. 어쩌면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헤쳐 나오면서 지금 내가 모르는 감정을 나누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나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고 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지금보다 많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건 오직 나 자신에게만 매달릴 때만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구에서 250km 떨어진 곳에서 살아온 시간이 18년이다. 그중 절반은 전남편과 함께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혼자였다. 혼자인 시간의 초반에는 외롭고 서글펐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내 삶의 중요한 두 가지를 얻게 되었다. 혼자인 시간이 없었다면 10시간 넘는 장거리 등산을 매주 할 수 있었을 것이고, 하루에 두 시간씩 꼬박꼬박 노트북 앞에 앉아있을 수 없었을 거다.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랬을 것 같다. 글쓰기와 등산이 나에게 준 것을 생각하면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에 이르기 위해 지난 모든 일들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고.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자랑스러울 건 없지만, 왠지 모르게 흡족함이 밀려온다. 오후의 햇빛이 길게 내려온 부엌을 떠올리고 미소 지을 수 있을 만큼.


KakaoTalk_20251207_110148117.jpg 보미 너는 뭘 그리워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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