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이가 영어학원을 마치는 시간은 밤 10시 20분이다. 늦은 시간에다 학원이 원룸 건물이 늘어서있는 골몰에 있어서 한동안 데리러 간 적이 있었다. 보미 산책도 시킬 겸 보미와 걸어가서 학원 건물 입구에서 초밥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나를 발견한 후의 초밥이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싶더니 하루는 그러는 거다.
초밥: 엄마 인제 안 오면 안 돼? 혼자 음악 들으면서 가고 싶단 말이야.
나: 노래 들어. 모른 척해줄게.
그렇게 말하고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초밥: 그거랑 다르지. 지금은 같이 가. 엄마!
나: 됐어. 나 말 안 시킬 거야. 우리는 지금 안 만난 거야.
그러고 있는데 초밥이가 앞에 가는 사람을 보고 “형규야!”하고 불렀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 옆 라인에 사는 이웃이자, 초밥이의 초중등 동창이자, 문우의 아들 형규였다.
나: 와, 형규야 오랜만이다. 너도 학원 갔다 와?
형규: 안녕하세요. 야, 너 너무하네. 어머니한테 가방 메게 하고.
그때 나는 괜찮다고 하는 초밥이한테서 억지로 가방을 뺏어서 메고 있었다. 멜 때마다 하도 무거워서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벌을 받고 있었냐”라고 말하는 걸 잊지 않는다.
나: 가방은 괜찮은데, 내가 데리러 왔다고 화내는 거 있지.
초밥: 내가 언제 화냈다고 그래. 그냥 안 데리러 와도 된다고 했지.
형규: 어머니한테 왜 그러냐?
나: 기껏 데리러 와줬더니 구박한다니까.
형규: 학원이 어딘데?
초밥: 바로 앞이야. 보건소 건너편.
형규: 아.... 거기는 안 데리러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초밥: 그치? 우리 엄마가 유난이라니까. 우리한테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간절한지 몰라. 형규도 지금 엄마랑 나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뺏기고 있어. 우리가 얘 시간을 스틸한 거라고.
형규는 와하하, 웃으면서도 아니라고 하지는 않았다.
형규와 초밥이는 중학교 3년을 같은 정류장에서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다. 간혹 학교에 일찍 가야 할 일이 있으면, 나는 “형규도 일찍 가?”라고 물어보고 내 차로 함께 가고, 다음에는 초밥이가 형규 어머니 차로 가고는 했다.
둘 다 배구부와 학생회를 해서 일정이 겹치는 날이 꽤 있었다. 학교 일정으로 늦게 마치면 집에 돌아올 때 같이 택시를 타고 왔다. 한 번은 배구부 연습을 마치고 초밥이가 여학생으로 구성된 조직원들과 우르르 학교를 빠져나와 분식집에서 피카추 같은 걸 사 먹었는데, 형규가 뒤에서 뻘쭘하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조직원들은 “형규가 너를 왜 기다리는데? 둘이 사겨?”라고 묻자, 초밥이는 아니라고 하고 형규의 손에 피카추 하나를 쥐어주었다고 했다.
형규 말고도 스쿨버스를 함께 타던 남자사람친구가 두 명 더 있었다. 3학년이 되어서 드디어 버스 맨 뒷자리(왕고자리)를 차지하고 좋아했던 아이들. 지금은 각각 다른 남고를 다닌다.
“우리 반 어떤 놈이 초밥이랑 인스타 맞팔한 게 인생 최대 업적이라고 하더라.”
“우리 학교에도 그런 미친놈 있어. 내가 초밥이랑 스카에 있는 사진 인스타에 올렸더니, 니가 뭔데 초밥이랑 스카를 가냐고 사귀냐는 거 있지. 얘가 뭐라고. 이해가 안 돼.”
“나도 이해가 안 돼.”
세 남고생은 머리를 맞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 초밥이가 그게 왜 이해가 안 되냐며 화를 낸다고 했다. 세 명의 남자사람친구들은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초밥이랑 친하다는 얘기를 절대 하지 않는단다.
*
하루는 밤 11시가 되기 십 분 전에 초밥이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동진이랑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형규가 학원 끝나고 왔거든? 나 좀 늦게 가면 안 돼?”
초밥이 통금시간은 11시다. 스카를 가든 노래방을 가든 11시 안에는 무조건 집에 들어와야 한다. 이유는 내가 자야 하기 때문이다. 11시 1분이 되는 순간, 전화해서 “나 자야 되는데 왜 안 와!”라고 하는 건 일상이다.
“형규랑 갈 테니까 엄마 그냥 자.”
그날밤 나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