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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집어치우고 싶지 않게 하는 방법

감정을 뺀 짤막한 지시와 칭찬

by 김준정

“00님 서있으면 안 돼요. 움직여요. 십 초 남았어요.”

하지만 그 회원은 움직이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음을 온몸에 애절함을 담아 표현했다. 선사시대에 언어가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했으리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럼 잠시 쉴게요. 다들 물 한번 마시고 오세요.”


트레이너의 말 한마디에 회원들이 정수기로 우르르 몰려갔다.

“고마워요.” 나는 자신의 희생으로 세 명을 구한 회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쿡쿡, 옆에 있던 한 회원도 웃음으로 동조해 주었다. 나머지 한 명은 왜 안 오나 해서 뒤를 보니 스텝박스에 패잔병처럼 앉아있었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담아서 그 회원에게 건네주었다.


“아, 고맙습니다.”


그 회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을 받아 들었다. 나는 버피, 베어워크, 플러티 킥, 바운스 점프 런지를 그분과 함께 했기 때문에 그분이 정수기까지 걸어올 힘이 없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4대 1 그룹 피티에 등록한 지 6개월째다. 그룹 피티는 운동시간은 30분으로 네 명이 동작 4개를 각각 30초씩 하고 이동하는 서킷트레이닝을 한다. 동작은 매일 바뀌는데, 예를 들면 줄 흔들기, 플랭크, 버피, 스쾃을 한 세트로 6번 반복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세트 수가 늘어날수록 고통도 그만큼 늘어난다. 이때 위안이 되는 건 나만큼이나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다. 나 혼자만 당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유일하게 용기를 준다.

내가 등록한 그룹피티 체육관은 월, 목은 서킷 트레이닝, 화, 목은 타바타, 수요일에는 기구를 이용한 웨이트를 한다. 웨이트를 하는 날은 자세가 잘못되면 타깃 부위에 힘이 들어가지 않거나 부상을 당할 위험이 있어서인지 선생님이 개인지도를 많이 한다.


“팔꿈치로 허리를 찌른다고 생각하고 내리꽂아야 해요. 허리 세우고 두 어깻죽지가 만나야 한다고 했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나와 보세요. 제가 하는 거 한번 보세요.”


등근육을 키우는 랫풀다운을 하는 중이었는데 내가 하는 게 답답했는지 선생님이 직접 시범을 보였다.

“바가 얼굴을 스치듯이 내려와야 해요. 제 등 보이세요? 어깨 두 개가 만나는 거 보이죠? 자, 이제 해보세요.”

선생님이 나오고 그 자리에 내가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바를 내렸다. 바를 얼굴에 스치게 하고, 팔꿈치를 허리에 내리꽂고, 두 어깨는 만나게...


“굿! 잘했어요.”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이십 대 여성인데 언젠가부터 선생님이 운동방법을 설명할 때 긴장이 되었다. 애인이 잠수이별을 시전 하거나 어젯밤 과음으로 컨디션 난조이거나 그 외 다양한 이유로 신경이 예민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자 과외수업을 할 때 내가 겹쳐 보였다. 학생들도 나의 목소리 톤이 미세하게 바뀌어도 자기가 이해를 못 해서인가 하고 위축되겠구나. 배우는 입장이 되어보니 가르치는 사람의 감정과 태도의 작은 변화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걸 체감하게 된 것이다. 몸의 군살을 빼려고 피티를 시작했는데, 뜻밖의 부분이 자극이 되었다.

사실 트레이너 선생님은 과도한 열정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지도하는 분이다. 회원에게 많은 요구를 해서 다 집어치우고 싶게 만들지 않는다. 한 번은 신입회원이 플랭크를 하는데 자세를 취하자마자 팔과 다리에 힘이 없는지 무너진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무릎을 대고 해 보세요”라고 했고, 곧바로 “굿, 잘하고 계세요”라고 했다. 감정을 뺀 짤막한 지시와 칭찬이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한편 나한테 업다운 플랭크를 지시했다가 마지막 세트에서 내가 힘이 빠져서 팔을 부들부들 떨자 버티기만 하면 되는 플랭크로 바꿔주었다. 그것이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크게 다가오는 걸 느꼈다. 가르치는 사람이 나의 미묘한 변화에 감응해 줄 때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걸 느꼈다.


언젠가부터 과외수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과외수업이 아니라면 나는 다른 일로 돈을 벌어야 한다. 오랫동안 해와서 전문성이 생긴 일이 아닌 새로운 일을 한다면 시간을 더 많이 들이고도 수입이 적어질 거다. 수입도 수입이지만 학생들을 대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어린 사람들에게 성의 없게 하고 나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나를 위해서라도 수업에 집중하고 싶었다.


가끔 나는 공부법을 열을 올려서 설명하고는 하는데, 그룹피티를 하면서 설교의 무용함을 느꼈다. 랫풀다운을 말로 설명을 듣는다고 상상해 보니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알게 된 것이다. 직접 하면서 어느 부위에 힘이 들어가는지 느껴야 자세를 잡을 수 있는 운동처럼, 직접 풀면서 어느 부분에서 막히는지 느껴야 개념을 잡을 수 있는 수학은 공통점이 있었다. 과외 수업의 목적인 ‘시험을 위한 수학’에 한정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감정을 뺀 짤막한 지시와 칭찬이 그 지난한 길에 있는 사람을 다 집어치우고 싶지 않게 한다는 걸 알았다.

저 아닐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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