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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Jul 10. 2020

18살에 꿈을 버리라고 하는 건

영화 <라라 랜드> 후기

K는 내가 과외를 하는 학생인데 요즘 진로를 두고 고민이 많다. 

“어릴 때는 꿈을 가지라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라고 엄마가 말했어요.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많았고요.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니까 학교 선생님은 물론 부모님도 공무원 아니면 간호사가 되라고 해요.”


K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K가 앱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하자 부모님은 그런 일은 불안정하고 성공 가능성도 낮다며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승무원을 권했는데 K로서는 내키지가 않는 일이었다. 사람들과 있을 때보다 혼자서 무언가에 집중할 때, 편안하고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K에게 서비스직은 남의 옷을 입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영화 <라라랜드>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고 꿈만으로 버티기에는 외롭고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 만난 사랑 얘기다. 자신의 꿈이 간절하기에 상대의 꿈도 소중해서 서로의 꿈까지 사랑했던 두 사람, 미아와 세바스찬.

5년이 흐른 어느 날, 미아는 성공한 배우로, 세바스찬은 자신이 원하던 재즈 바의 오너가 되어 만난다. 하지만 둘은 더 이상 함께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아름답게 보였을까? 이루어지지 않은 꿈처럼, 피지 않은 꽃처럼.


갖지 못했을 때 그토록 빛나 보이던 성공이 막상 손안에 들어오면 빛을 잃어버리고 마는 걸까? 미아는 현재가 꿈이었던 시절을 회상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은 꿈으로 부풀었을 때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를 오랫동안 응시한다. 눈빛으로 말한다. 떨어져 있을 때조차 서로가 꿈을 이뤄가기를, 그 힘으로 자신도 포기하지 않았음을 얘기한다. 힘겨운 시간을 견뎌온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고, 못다 한 사랑의 아쉬움을 전한다. 그들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은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둘이 가지 않은 길, 그래서 꿈으로만 남게 된 이야기를 보여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장면. 다 가질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걸 미아, 세바스찬 그리고 나도 받아들인다. 세바스찬은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연주했던 곡을 피아노로 친다. 구슬프고 처연하게 흐르는 선율 속에 둘이 사랑했던 모습이 겹쳐진다. 끝까지 피아노로 말하는 세바스찬의 연주에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 그곳에서 미아만 우두커니 있는 장면은 세속의 인정은 얻었지만 그곳에 서로는 없음을 상징했다. 


어릴 때는 꿈을 가지라고 했다가 고작 18살에 꿈을 버리고 현실적이 되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른들이 그러는 데는 자신들이 꿈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가꿔나간 경험이 없기에 그 과정조차 충만하고 행복하다는 걸 모르는 것 아닐까? 때로는 바닥에 내팽개쳐져서 처절하고 비참할지라도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일을 말이다.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지 않는가?


나도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목표와 꿈의 차이를. 실현 가능한 범위 안에 있는 것 중에 하나를 골라 꿈이라고 했고, 내 조건에서 고를 수 있는 남자 중에 가장 나아 보이는 상대를 사랑이라고 했다. 꿈과 사랑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같다. 


꿈과 사랑 모두를 이룰 수는 없다는 걸 영화에서 보여준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과거의 자신들의 꿈처럼 사랑도 영원히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서로를 기억할 때마다 자신이 꿈에 부풀었던 순간이 살아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사랑도 변치 않을 테니까.


경쾌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심오한 메시지가 있었다. 학원을 폐업하고 생활비 걱정을 하며 살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대책 없다고 느끼고 있는 참이었다. 영화가 나에게 응원을 해주지는 않았다. 어차피 삶은 선택일 뿐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할 뿐.


진정한 사랑을 하고 난 사람의 눈이 전보다 깊어지듯, 꿈을 향해 도전해본 사람은 자신의 가슴이 뜨거웠던 때를 두고두고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때가 자신이 별이 되었던 순간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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