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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상위 3퍼센트여서 마음이 착잡했다

by 김준정

딸은 우량아였다.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나림이는 옆의 아기들과 확실히 체급이 달랐다. 출산을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차트를 내 옆에 두고 간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기들의 몸무게와 머리둘레가 적혀있었다. 호기심에 차트를 몇 장 넘겨보니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최근 4개월간 태어난 아기들 중에 내 딸의 머리둘레가 가장 컸기 때문이다. 머리둘레 43센티미터, 다른 아기들과 앞자리 숫자가 달랐다. 몸무게도 단연 최상위권.


산후조리원에서는 “한 달 되었냐?”는 소리를 수시로 들어야 했다. 새로 들어온 산모들은 (내가 어떤 이유로 조리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좌욕실은 어디냐, 원무과는 어디냐 등을 물었다.

“저도 어제 입원해서 잘 몰라요.”

“애가 크길래… 오래 계신 줄 알고…”

“얘도 세상 구경한 지 삼일 됐어요.”

“아… 그래요? 아들은 체격이 크면 좋죠.”

“딸인데요?”

이런 대화가 오가는 줄도 모르고 꿀떡꿀떡 젖을 잘도 빨고 있는 딸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딸은 오직 능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어쩌면 20대에는 조금 외로울지는 모르지만 타고난 생활력과 건강함으로 정면승부를 벌려 당당히 살아가게 될 거라고.


보건소에 예방접종을 하러 갔을 때다. 허벅지에 주사를 맞는 거라 아이를 눕히고 바지를 벗겼는데, 옆에 있던 애기 엄마가 “아이 징그러”라고 했다. 뭘 보고 그러나 해서 돌아보니 그녀의 시선은 우리 딸의 허벅지에 꽂혀있었다. 퉁실퉁실한 살이 접힌 걸 보고 그런 모양인데,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아예 상대할 필요가 없다 싶어서 접종이 끝나는 대로 나와버렸다.


나림이는 젖을 주면 한 번도 사양하는 일이 없었다. 졸음이 오면 나는 애를 젖에 매단 채로 소파에 길게 누워 잠을 잤다. 편안하고 충만했던 우리의 시간. 먼저 깨서 우는 일도 없었던 우리 아기, 나만 보면 생글거리고 무슨 장난에도 까무러치게 웃던 아기, 토하거나 짜증을 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내 기억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잘 자고, 잘 먹어서 엄마한테는 고맙기만 한 아기였다.


타고난 먹성인지 몰라도 심지어 감기약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어서 맛있나 하고, 나도 한번 먹어보기도 했다. 이후에도 무서운 성장세를 보였다. 나림이를 보는 사람들마다 본래 나이보다 두 살 쯤은 많이 봤고, 소아과에서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면 몸무게는 같은 연령 아이들 중 상위 3퍼센트에 들어갔다. (키는 상위 10퍼센트였는데, 이때는 마음이 좀 찹찹했다) 내 딸이 상위 3퍼센트라니. 아빠한테 말했다.


“아빠, 나림이가 상위 3퍼센트래.”

“영재 검사 했드나?”

“아니, 몸무게가 전국에서 상위 3퍼센트로 나왔어요.”


아무튼 그 시절은 나림이가 (남들 눈에는 아니고) 내 눈에만 예뻤던 때였다. 돌잔치에서도 “저 집 딸은 인물은 그저 그래”라는 인상을 갖고 돌아간 손님들이 많았다. 나중에 서너 살쯤 되었을 때 원피스를 입은 나림이를 보고 돌잔치에 왔던 지인이 말했다.

“어머 머머, 얘가 누구야? 왜 이렇게 예뻐진 거야?”

과하다 싶은 호들갑을 떠는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이게 바로 기대치 제로의 원리죠.”

지인은 정곡을 찔렸다는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초등학교 6학년인 나림이는 169센티미터에 52킬로그램으로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외형뿐 아니라 성격까지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어버렸다.

나림이가 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만든)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엄마 나 이미 엄청 잘 먹고… 살도 엄청 쪘어. 그만 좀 먹으라고 해. 엄마가 나 임신했을 때 많이 먹어서 나 이미 뚱뚱해. 나 낳아줘서 고맙고 사랑해.(오글거려)”


다이어트를 한다며 닭 가슴살 샐러드나 해주면 양껏 먹을까 그 외에는 조금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안 먹는다고 잔소리를 하게 될 줄이야) 아이돌 여가수를 미의 기준으로 정해놓은 딸에게 성장기 5대 영양소의 중요성은 말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러네이 엥겔른의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읽고 딸에게 말했다.


“젊은 시절 외모가 출중했던 여자일수록 나이가 들면서 상실감에 시달린대. 외모 강박은 끝도 없고, 승자가 없는 싸움이야.”


그렇게 말한 나도 늘 살찔까 봐 걱정하고, 새로 한 파마가 어떤지, 옷이 잘 어울리는지 딸에게 물었다. 책에서는 외모에 신경 쓰는 엄마의 태도가 딸의 외모 강박을 부추긴다고 했다. 또 엄마 탓인가.


주는 대로 넙죽넙죽 잘 받아먹던 그 아이가 몹시도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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