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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짓궂은 장난을 쳐도 괜찮은 사람

by 김준정

오랜만에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니 흥이 올랐다. 친구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들떴다. 선이 태안 캠핑장이라며 놀러 오라고 했고, 그곳은 군산에서 150km가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엄마는 선이 이모랑 제일 친했어?”

자신이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오래 잊고 살아온 사람처럼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주와 나는 죽이 징그럽게도 잘 맞았다. 매일 술 마시고 놀아도 질리지가 않았고, 누구 하나 그만 마시자고, 오늘은 쉬자고 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고”를 외치다 보니 내 별명은 ‘고빨대장’이 되었고, 주와 나는 이인조로 불렸다. 대학교 앞 술집을 출몰하는 이인조.


주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노래방에서 자기가 예약하지 않은 노래마저도 최선을 다했다. 소찬휘의‘티얼스’ 같은 노래만 하는 주는 소리를 얼마나 질러대는지 같이 부르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 순서에는 반드시 마이크 두 개를 다 사수하고 주가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주가 한창 열창할 때 뒤에서 줄을 몰래 빼기도 했는데, 그녀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노래를 해서 함께 있던 사람(남자)들은 쓰러지게 만들었다. 주 앞에서는 늘 장난기가 발동했고, 아무리 짓궂은 장난을 쳐도 괜찮았다.


‘쪼매난못난이’, ‘쌈닭’ 영아도 있다. 영아 생일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 우리는 누군가의 생일에는 술을 떡이 되도록 마셔야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나는 전날의 숙취 때문에 도저히 술을 먹지 못할 형편이었다. 갈 때부터 편의점에서 컵라면의 물을 받아 들고 '겔랑'(저렴하지만 안주가 지독하게 맛이 없는 탓에 손님이 없는 우리 아지트)에 갔다. 나는 영아가 충분히 화를 낼만하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반성하는 자세로 라면 가닥을 입에 넣고 있었다. 영아는 그런 나를 보고 술 마시라며 몇 번 화를 내다가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잠시 후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고, 머리가 산발이 된 영아가 튀어나와 “야”하더니 용수철처럼 다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억, 영아… 왜…”

내가 라면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지만, 나만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 앉은 탓에 나 빼고 아무도 못 본 모양이었다. 곧이어‘욱’’아’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모두들 화장실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술집에는 우리 빼고 한 테이블의 손님만 있었는데 거기 있던 남자 둘이 화장실로 튀어 나갔다. 그쪽 여자와 영아가 화장실에서 시비가 붙은 거였다. 우리 팀은 주, 진, 수, 나, 선, 선의 남자 친구가 있었다. 저쪽 팀은 넷, 우리는 일곱이었다.


일단 엉켜있는 둘을 떼어놓기부터 했다. 씩씩거리는 둘을 붙잡고,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말들을 종합해봤다. 욕도 영아가 먼저 했고 머리채를 먼저 잡은 것도 영아였다. 싸운 이유는 화장실에 들어가 있던 여자가 통화하느라 빨리 안 나와서였는데 얘기를 들을수록 우리의 고개는 점점 숙여졌고 조용히 마무리하는 게 우리한테 득이라는생각이 들었다. 쪼맨한 게 겁도 없이, 진짜. 영아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상황이 정리되고 자리에 앉아서도 영아는 그 여자를 향해 “뭐, 씨. 죽어볼래?”하면서 시근거렸고, 나는 다시 싸움에 불이 붙을까 봐 영아한테 “고마 해라, 쫌”하고, 옆 테이블을 향해서는 비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니는 어디 있었는데?”

갑자기 영아가 내게 말했다.


사실 나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나도 애들이 튀어 나갈 때 일어서긴 했는데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몇 번을 샌들에 발을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영아가 도발하는 소리에 저절로 힘이 빠져 버려서다.


“니는 친구가 맞고 있는데, 여 앉아 있었나?”

“니가 때린 거 아이가?”

“아이다. 나도 머리 뽑혔다. 볼래?”

영아는 사자머리를 나한테 들이밀었다.

그 뒤로 친구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최선을 다해 나를 놀렸고 나는 잠자코 있어야 했다.


뭐 대단한 무용담이라고 나림이한테 떠들어대다 보니 캠핑장에 도착했다. ‘사건의 현장’에 있던 두 사람이 보였다. 그때 선의 남자 친구가 남편이 되었고 동시에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도 장한 어버이가 되었던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내가 그 얘기를 꺼내자 선과 선의 남편은 웃겨 죽으려고 했다. (선의 남편은 한 살이 어려서 그때는 반말을 했는데 지금은 존댓말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벌써 20년이나 된 일이 지금도 배를 잡고 웃을 일이라니 신기했다. 그때도 얼마나 우려먹은 얘기인데 말이다. 우리에겐 질리지도, 잊을 수도 없는 이야기다.


내친김에 선이 주에게 전화를 했다. “좐인한~여자라~나를 욕하지는 마~좜시 너를 위해 이별을 택한 거야~”내가 옆에서 통화를 방해하며 주의 18번을 불렀다.

“준정이 저거 또 술 취했네. 내 인자 그런 거 안 부른다꼬 전해라.”

안 부르기는 술 먹으면 부를 거면서. 근데 이제 다 무선 마이크인데 어쩌지?


이렇게 옛 추억에 잠겨 한껏 흥겨운 밤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나림이에게 마음 바뀌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담임선생님한테는 엄마가 잘 얘기할 수 있다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녀석은 학교를 가야 된다고 했다. 개근에 대해서 엄마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림이는 단호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선을 깨워 라면 끓여달라, 김치와 밥은 내놓으라고 했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커피도 달라고 했다.


군산에 돌아와 여느 월요일과 다름없이 나림이는 학교로 갔고, 나는 요가 수업을 갔다. 덕분에 나는 요가 수업에 개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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