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은 이유가 있다.
아이를 육아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한 지인이 부동산을 차렸다. 그리고 2년 가까이 되는 시점. 키즈카페에서 모처럼 만나 바로 전날 상가 계약을 하며 200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루에 20도 벌기 어려운데 200이라니 대단하다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는데 그럼에도 부동산을 그만하고 싶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있는 사람이 더해서가 아니라 없는 사람이 너무 뭘 몰라서 속이 터지겠다고.
“언니, 가난한 사람은 이유가 있어요. 게으르거든요. 준비하라는 것도 한번에 알아듣지를 못해요.”
모처럼 쉬는 월요일. 오전에 마쳐야 할 업무를 정리하고 나니 금새 오전 11시가 훌쩍 넘는다. 방학인 아이와 준비를 마치고 치과를 시작으로 이비인후과, 미용실, 마트를 들러 간단한 간식거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집에 들어왔다.
정리를 좀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문득 어제 만난 지인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돈다.
가난한 사람은 이유가 있다.
나의 가난은 이유가 뭘까. 게으름일까. 목이 쉬도록 한 주를 보냈다. 쉬지 않고 주말까지 달렸다. 나의 가난은 이 체력이 문제일까.
잠깐 상가에 다녀온 사이에 하루 일당이 훌쩍 나간다. 둘째 충치 치료 치과 14000원, 아이들 감기 이비인후과 12000원, 약국 6000원, 단발로 자르고 싶다는 아이 미용실 20000원, 마트 23000원, 반찬 14000원,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첫째 아이를 위한 고기 16000원, 아이들 과자 5000원, 그 사이 아이가 집은 풍선 2000원, 오늘따라 어묵을 3개를 먹는 둘째에 10000원 가까이. 잠깐 사이에 훌쩍 10만 원이 넘는다. 상가 문앞에서 모처럼 만난 첫째 엄마는 아이를 학원에 들여 보내고 기다리는 중인지 아이가 옆에 있는 내게 학원은 안가느냐 묻는다.
그들이 정상인 걸까. 내가 가난한 걸까.
당장 수요일에도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야 한다. 나의 곤궁함에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서럽다. 눕고 싶은 마음이 든 나의 게으른 마음 때문에 이 가난이 나에게 온 것일까.
아니면 타고난 팔자가 어쩔 수 없는 걸까. 신문사를 담당하면 무엇하나, 협회가 있으면 무엇하나. 어쩌면 지금 기사문 하나 작성할 게 아니라 돈도 안 되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봐 주고 있을 게 아니라 차라리 마트에 나가 야채라도 하나 포장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들의 시간이 내 시간보다 더 아깝게 느껴지는 건 내가 엄마여서 그런 것일까. 이곳이 우리가. 더 낫기를 바라는 마음.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고 가만히 바라본다.
내 오늘의 가난은 기꺼이 너희들을 위해. 너희들에게 가난이 묻지 않게. 엄마만 가난해지기로 했다. 가난한 자의 이유가 되지 앉기 위해 앉았다. 그런데 손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잘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