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타이레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두통이 심한 아침이었다. 약을 먹었지만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짜증이 밀려왔다.
기분 좋게 잠에서 깬 아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이 맑지 않다.
사무실로 도망치듯 나왔다. 내 컨디션이 이따위로 바닥을 칠 때마다 나로 인해 집 분위기가 흐려진다.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고 이제는 혼자 해결하는 게 익숙하다.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주말 아침 이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오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들의 안위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급하게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가 다 켜지기도 전에 커피는 바닥을 드러냈다.
마음을 바꿨다.
새로 산 펜으로 노트에 끄적였다.
고맙게도 노트의 한 바닥을 다 쓰고 나니
심장은 조금 빠르게 뛰는 것 같지만 두통은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하다.
나는 언제까지 너희들에게 미안해할까.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좀 더 좋은 엄마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 갈 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뭔가를 들고 가야지..
나는 혼자 살았어야 하는 게 맞았을까. 차라리 미국에 들어갔을 때 나오지 말걸 그랬나.
나오자마자 해외파견이라도 갈 걸 그랬나.
부모님이 나 때문에 속이 탄다는 말을 들었어도 버티는 게 맞았을까.
남편을 비롯한 아이들의 행복을 내가 채우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결혼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나였을지도.
미안하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도. 집에 들어갈 때는 웃으면서 들어가야지.
세상 행복하게 아이들을 봐줘야지.
지난 방학에 세부에 다녀왔다. 사무실을 빼니 보증금이 나왔다. 보증금이 나오기도 전에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둘째 아이에게는 첫 해외여행이다. 아이는 너무도 행복해했다. 500만 원이라는 보증금이 세상 가치 있게 써지는 것만 같았다.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의 행복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같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아이는 툭하면 필리핀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저렇게 노래를 부르니 언젠가 우리는 또 가겠구나 싶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지 싶기도 하다.
오늘 아침에는 두통이 겹쳐 귀엽게만 보던 그 말에 딴지를 걸었다.
"너는 아는 나라가 필리핀밖에 없지? 거기밖에 안 가 봐서."
순간 분위기가 얼어버린다.
"아닌데, 나는 미국도 알고 일본도 알고 인도네시아도 알아 엄마"
피식 웃음이 난다.
"그래. 다음에는 거기도 가 보자. 세상에 좋은 곳이 참 많아."
고맙다. 불량한 엄마의 대꾸에 순수하게 말해줘서.
엄마랑 꼭 가자. 그렇게 타고 싶어 하던 버기도 또 타고 말이야.
식단- 아침:피넛버터 바른 식빵 1장, 두유 / 점심: 샐러드 / 저녁: 분식
운동- 인터벌 자전거 20분 혹은 공원 러닝 30분, 복근 10분, 1분 플랭크, 구르기 100
배탈이 난 덕분에 배둘레가 1cm는 준 것 같다. 기운은 없지만.. 기분은 좋은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