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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른 May 25. 2024

불량 엄마

커피와 타이레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두통이 심한 아침이었다. 약을 먹었지만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짜증이 밀려왔다.

기분 좋게 잠에서 깬 아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이 맑지 않다. 


사무실로 도망치듯 나왔다. 내 컨디션이 이따위로 바닥을 칠 때마다 나로 인해 집 분위기가 흐려진다.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고 이제는 혼자 해결하는 게 익숙하다.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주말 아침 이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오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들의 안위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급하게 커피 잔을 주문하고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가 다 켜지기도 전에 커피는 바닥을 드러냈다.


마음을 바꿨다.

새로 산 펜으로 노트에 끄적였다. 

고맙게도 노트의 한 바닥을 다 쓰고 나니 

심장은 조금 빠르게 뛰는 것 같지만 두통은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제일 미안하다. 

나는 언제까지 너희들에게 미안해할까.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좀 더 좋은 엄마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 갈 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뭔가를 들고 가야지.. 


나는 혼자 살았어야 하는 게 맞았을까. 차라리 미국에 들어갔을 때 나오지 말걸 그랬나. 

나오자마자 해외파견이라도 갈 걸 그랬나. 

부모님이 나 때문에 속이 탄다는 말을 들었어도 버티는 게 맞았을까.

남편을 비롯한 아이들의 행복을 내가 채우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결혼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나였을지도.

미안하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도. 집에 들어갈 때는 웃으면서 들어가야지.

세상 행복하게 아이들을 봐줘야지.

 


필리핀, 세부


지난 방학에 세부에 다녀왔다. 사무실을 빼니 보증금이 나왔다. 보증금이 나오기도 전에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둘째 아이에게는 해외여행이다. 아이는 너무도 행복해했다. 500만 원이라는 보증금이 세상 가치 있게 써지는 것만 같았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의 행복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같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아이는 툭하면 필리핀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저렇게 노래를 부르니 언젠가 우리는 또 가겠구나 싶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지 싶기도 하다.  

오늘 아침에는 두통이 겹쳐 귀엽게만 보던 그 말에 딴지를 걸었다.

"너는 아는 나라가 필리핀밖에 없지? 거기밖에 안 가 봐서."

순간 분위기가 얼어버린다. 

"아닌데, 나는 미국도 알고 일본도 알고 인도네시아도 알아 엄마"

피식 웃음이 난다. 

"그래. 다음에는 거기도 가 보자. 세상에 좋은 곳이 참 많아."


고맙다. 불량한 엄마의 대꾸에 순수하게 말해줘서.

엄마랑 꼭 가자. 그렇게 타고 싶어 하던 버기도 또 타고 말이야.


일지 


식단- 아침:피넛버터 바른 식빵 1장, 두유 / 점심: 샐러드 / 저녁: 분식

운동- 인터벌 자전거 20분 혹은 공원 러닝 30분, 복근 10분, 1분 플랭크, 구르기 100

배탈이 난 덕분에 배둘레가 1cm는 준 것 같다. 기운은 없지만.. 기분은 좋은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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