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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P글 Jun 28. 2024

장려상의 진실

장려상


초등학교 2학년 때 글쓰기로 상을 받았다. 장려.. 상이던가? 그때 그 상 때문에 지금도 이렇게 글쓰기에 집착을 하나. 사실 온전한 내 실력도 아니었는데. 8할은 엄마의 작품이었다. 쓰기 싫어 베베 꼬인 나를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한 덕분에 2학년 때 처음으로 이름이 불려 박수를 받았다. 사실 그때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늘 한계가 있었다. 타고나야 하는 소질이 없었던 건지 미술 학원이 아닌 피아노학원에 다녔기 때문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처럼 그림이 표현되지 않았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부쩍 커진 키 덕분에 뒷자리가 내 자리가 되었다. 마음에 드는 노트를 사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으로 치면 웹소설같이 가벼운 이야기였다. 남녀공학 중학교였다 보니 의뢰가 자주 들어왔다. “나랑 00의 이야기로 글을 좀 써 줘.” 수업 시간에 열심히 쓰면 쉬는 시간에 내 노트는 옆 반까지 돌았다. 중3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뭐. 차렸으니 다행이다.     


글=피난처


사춘기가 늦었던 건지 대학 때 한창 방황을 했다. 친구들은 술로 해결을 하는데 술은 도통 그 맛을 모르겠어 글로 뱉어냈다. 뱉어내며 살았다. 드러낼 수 없는 글은 비공개 처리를 했다.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랄 때는 잠시 꺼내두기도 했다. 불안함과 해방감이 공존했다.     


한동안 글을 잊다가도 속에 뭔가가 쌓이면 한글 프로그램에 비밀번호를 걸고 울면서 글을 썼다. 그걸 쓰는 나를 그걸 읽는 내가 공감하며 받아주었다. 대다수의 파일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삭제해 버렸다. 차라리 처음부터 저장을 하지 않으면 되는데 도피처가 되어 준 공간에 대한 내 나름의 예의였다.


응, 맞아


더 이상 글로 칭찬을 받을 나이는 아니었는데 우연히 들은 특강에서 내 글이 읽혔다. 정말 누군지 궁금하다는 말에 손을 들지는 않았다. 한결같은 모지리다. 내가 교열사라서 그런 걸까? 툭하면 너는 잘 쓰니까 라는 말을 듣는다. 내 실력이 아닌 것만 같아 어색하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었다. 내 실력이 아니었던 그 장려상을 내 상으로 인정하고 싶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점점 글을 안 읽는다.

그래서 글이 쉬워진다.

어차피 안 읽을 텐데 써도 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드니

글이 쉬워진다.


이 흔한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게 가르칠 자격이 있을까.

당장 글쓰기로 강의를 하라는데 마음이 또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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