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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른 Jul 04. 2024

글의 색

무채색 글을 보는 교정교열사 이야기

내가 쓰는 책이나 

내가 봐줘야 하는 글은 대부분 무채색에 가깝다. 


작가의 마음이 읽히며 감정선을 팡팡 터트리는 에세이나

복선에 숨을 죽이며 손에서 떼고 싶지 않은 소설이 아니다. 


1에서 1을 더하면 2라는 법칙을 전하듯 

일상보다 더 감정이 절제되어 있는 글이 대다수다. 

그나마 드러난 감정은 지금 어떤 현상이 지속되면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올 거라는 걱정 어린 예견 정도이다. 


그래서 어떠한 의무감이 생기지 않으면 잘 찾아보지도 읽지도 않는다. 

대신 누군가에게 찾아졌을 때는 그 의무감을 다하기도 한다.  

딱이다. 무채색이. 


교정교열사가 되면 많은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들의 첫 번째 독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는 내가 살펴봐야 하는 글은 대다수 재미로 보는 글은 아니었다.

정보를 주는 글은 그렇다.


상사에게 혼나는 보고서와 통과하고 싶은 강렬한 마음이 담긴 글이 대다수였다.

옅은 회색인 글을 최대한 검은색으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상사에게 심사위원에게 최대한 선명하게 보이기를 바라며 고치고 또 고쳐본다. 

지금 쓰는 책도 이들을 위한 책이다. 옅은 회색의 글이 진해지며 읽히기를 바라며 쓴다.

왜 문제가 있었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책을 쓴다.

그래서 쓰면서도 한 켠의 걱정을 가지고 있다.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재미없으면 유용하기로 해야 할 텐데.'

 

옅은 회색의 글을 진하게 만드는 작업에 대한 책이다. 그래서 동색이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마음으로 읽힐 수도 있는 책이다. 덩달아 나도 무채색이 되는 것만 같아 요즘에는 일부러 색이 잔뜩 들어간 옷을 입기도 한다. 나름의 저항이다. 

그러다 생각한다. 

쨍하고 밝은 색은 쨍하고 밝을 때는 부딪혀 잘 안 보일 수 있지만 무채색은 조금만 더 진해지면 밝은 날도 흐린 날도 잘 보인다고. 


세상에 보고서를 재미있게 보는 사람은 희박하다.

하지만 간절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의뢰를 받는다. 

그리고 책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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