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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명 른 Jul 15. 2024

수능이 주는 착각

마지막인 줄 알았지?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서 정리될 필요가 있었다. 일이나 책으로 내용을 정리하던 만다라차트에 7월의 반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에 적어 본다. 뒤죽박죽 하던 생각들이 글자로 쏟아진다. 무엇을 버려야 할지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할지를 가린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우선순위로 정해진 할 일들을 머릿속에 다시 넣는다. 그래놓고 우선 해야 할 일들을 뒤로 미룬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버려야 할 사항 중에 하나였다. 쉬운 일은 먼저 하고 싶어 진다. 맛있는 음식부터 먹듯이. 이렇게 끼적이는 일은 내 삶의 즐거움인 듯도 하다. 해야 할 일을 보니 문득 수능을 보던 날이 떠올랐다.


수능만 끝나면 이제 내 인생에 시험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한껏 밀려오는 허무함. 내 인생이 이따위 시험에 결정되다니. 이 시험에서 준 점수가 내 6.3.3년 총 12년을 평가한단 말인가. 기적은 없었다. 오히려 긴장한 탓인지 실수도 있었고 편식하던 대로 과목 점수가 나왔다. 그렇게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엄마를 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시험을 잘 보고 못 보고를 떠나서 내 12년을 이렇게 평가받는 게 너무도 억울했던 듯하다. 허한 마음은 그렇게 눈물로 쏟아졌다. 다음 날도 무거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은 선생님이 날 데리고 나갔고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어보셨지만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허무한 감정을 눈물로 털어버리고 싶었을까. 그날 저녁 뉴스에는 몇 명의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가 보도됐다. 누군가는 1교시가 끝나자마자 옥상으로 올라갔고 누군가는 차마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 선택을 했다. 슬펐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도 수능이 다가오면 슬펐다. 매해 비슷한 뉴스가 들려오는 게 그럼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수능이 절대 끝이 아닌데. 그 순간만큼은 수능이 끝인 것처럼. 전부인 것처럼. 수능에서 잘못되면 인생이 잘못되는 것처럼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에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 과정을 즐기지 못했고 극단적인 선택들이 있었다. 절대 끝이 아닌데. 한 고비를 넘기면 다음 고비가 기다린다. 더 큰 고비가 있어서 이런 허들을 만들어 놓은 걸까. 마치 벼랑으로 새끼 사자를 밀어내듯. 

내 아이는 조금 더, 아니 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갔으면 하면서도 당장 해야 할 과제와 학습지를 체크하는 나를 본다. 이내 또 아이가 이게 전부라고 생각할까 봐 이건 삶의 일부에 불과하단다.. 속삭인다. 


고비라고 생각하는 순간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과정의 가치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많은 고비를 만난다. 그 시련이 한가운데에 서서 웃을 수 있기를. 하찮은 삼각김밥 하나 두런두런 먹은 것으로도 즐거움일 수 있기를. 시련과 고비가 쌓여 나를 만들지라도 그 과정의 하찮은 추억 하나는 챙길 수 있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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