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에서 일련의 소동이 있었다.
청소노동자가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 집회를 열었는데, 어느 재학생이 집회 소음으로 학습권이 침해됐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이런 상황을 비판하며 일부 2030 세대의 ‘공정 감각’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나 절박함이 '나'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초래할 때,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축적된 부당함에 대해 제도가 개입해 '내' 눈앞의 이익에 영향을 주려 할 때, 이들의 공정 감각은 사회나 정부 혹은 기득권이 아니라 그간의 불공정을 감내해 온 사람들을 향해 불공정이라고 외친다.”
월급도 적은데 일할 사람은 감축시켜 노동이 가중되니 처우 개선을 위해 집회를 열었음에도 열악한 환경을 개선할 의지가 없는 학교가 아닌, 그 환경을 감내해 온 청소노동자들에게 ‘집회 소음’을 이유로 소송을 거는 학생의 판단을 꼬집는 내용이다.
MZ세대는 기존 세대보다 ‘공정성’에 민감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같이 경쟁이 심화된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불공정을 참지 못하리라.
문제는 불공정 발생 시 이에 대한 책임 주체를 분별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임금인상, 샤워실 설치, 인력 충원을 요청한 청소노동자들에게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금 등의 명목으로 638만 원가량 손해배상 청구 소송한 연세대 재학생 3명처럼 말이다.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마음속에 이타심이 있으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한다.
용기가 있으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태도를 취한다.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면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을 위해 노력하고 수익창출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려 한다.
소송을 건 학생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한 사람의 단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지만 이번 사태를 두고 볼 때, 그 안에 사랑, 평등, 배려, 공감이 아니라 경쟁, 이익이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경쟁만 해서, 내 이익을 우선 시 하는 환경에서 자라서 그렇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사리분별 정확하네, 할 수가 없다.
똑 부러지네, 할 수가 없다.
“좋은 어른 한 명만 주위에 있었어도!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감성지능이 있었어도!”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크게 다를까?
내 마음에 있는 것이 합당한지 아닌지 한 번쯤 점검해봐야 한다.
당신의 유니크한 감성과 가치를 두고 보편적 정서와 타협하란 게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에게 반발감을 일으키는 요소가 있다면 타협해야 한다.
그게 당신을 위해 좋다.
혼자 생각하고 사색하는 거에서 그치면 모를 수 있다.
드러내야 한다.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어때?" 화두로 꺼내보라.
생각보다 사람들이 나와 다름에 놀랄 것이다.
‘정말 그렇다고?!’ 할 만한 논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본래 사람은 편향적인 존재다.
자기 생각과 맞는 정보만 눈에 들어오고, 그 세상이 옳은 세상이다.
자기 안의 세상에서만 살지 말고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얘기를 나누고 논쟁하며 내 세상을 넓혀 가보자.
옳고 선한 것을 분별하여 내 마음에 좋은 것만 담아보자.
그게 성장이고 인격이다.
-여담이자 사담-
우리 회사 대표의 마음에 장사꾼이 없다.
철학자가 있다.
그래서 옳다고 믿는 것을 한다.
그의 마음에 '내가 잘해서'는 없고 '여러분이 잘해서'가 있다.
매달 전 직원을 불러 모아 ‘우리가 갈 방향은 여기다!’라고 끊임없이 얘기하는 대표를 본 적이 있는가?
회사에 대한 철학, 사람에 대한 철학이 없다면 진작에 접었을 일이다.
근무 시간에 업무를 멈추고 회사 얘기를 하자는 건 장사꾼이 아니라 철학자라서 그렇다.
안 좋은 건 솔직하게 얘기해달라, 고쳐보자 얘기하는 건 철학이 있어서 그렇다.
이런 대표가 있는 회사니 오래 지켜보자.
이런 회사의 공정 감각을 한 번 믿어보자.
만약 거부감이 일어난다면 그 이유에 대해 가감 없이 [윈디와의 채널]에 남겨보자.
늘 그렇듯 대표는 그의 철학을 담아 성실히 답해줄 것이다.
유플리더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트렌디한 사람이 되도록
재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양한 잽을 날릴 것이다.
대화의 소재를 주고
사색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플위클리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