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나가는 광역버스를 탔다.
대로 진입을 앞두고 기사님이 정중한 목소리로 외친다.
“곧 대로로 진입합니다. 모두 안전벨트를 매세요.”
몇 년을 이용한 광역버스건만 안내방송이 아닌, 기사님의 육성으로 안내받은 건 처음이다.
종착역에 다다르자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지품을 잘 챙기세요.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한 번 더 살피시고 조심히 가십시오.”
타성에 젖은 목소리가 아닌 진심 어린 목소리다.
승객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란 게 느껴지고, 본인 일에 대한 진심이 있기에 승객에 대한 마음이 우러나옴을 깨닫는다.
다른 기사님이 하지 않는 걸 왜 할까,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차이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만들어 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버스 문을 열고 닫을 때도 충분한 기다림이 있었고, 급출발이나 급정지가 없었으며, 차선 변경이나 커브 구간을 느낄 겨를도 없이 부드럽게 운전하셨다.
모든 과정에 정성이 있었다.
운전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들이지 않을 정성이다.
본인의 하루에 이처럼 정성을 들이니 그 하루는 얼마나 값질까.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건지, 날마다 하루를 정성으로 채우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모쪼록 기사님의 날들이 무탈하길 바랐다.
한 번 스치는 타인이라도 이렇게 행운을 빌어줄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하다.
돈 주고 사는 것도 아니고, 쓴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닌 ‘진심’, ‘응원’, ‘염원’, ‘기도’는 타인에게 주면 줄수록 내 안을 긍정의 기운으로 가득 채운다.
그래서 본인 일에 자부심을 갖고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며 본인의 하루를 정성껏 운영하는 기사님께 아낌없이 온갖 좋은 마음을 다 드렸다.
회사에서 주인 의식을 바라면 꼰대가 되는 시대다.
받은 만큼 한다는 마인드가 세련된 마인드가 되는 시대다.
그렇다면 더 이상 주인 의식을 바랄 수는 없는 건가.
주인 의식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하다가 대상을 살짝 바꿔보았다.
대상이 회사가 아닌 본인의 일이라면, 그래서 회사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본인 일에 대한 자부심이라면 사람들이 말하는 ‘주인 의식’이라는 게 절로 우러날 것 같다.
“회사에서 뭐가 나와요? 꼭 사장처럼 일하네요.”라는 말을 고객사로부터 한 번, 협력업체로부터 한 번, 그렇게 두 번 들었다.
거창한 일도 아녔고, 늘 하던 업무를 할 때 들었던 말이다.
‘내 일을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이 그날 그 타인의 눈에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마치 내가 버스 기사님의 멘트에서 자부심과 진심과 정성을 봤던 것처럼.
일에 대한 자부심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어디서 드러나는가?
내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
내 일이라서 책임지고 해내는 것.
내 일이기 때문에 남 탓할 일 만들기 전에 미리 꼼꼼히 체크해두는 것.
싫은 소리 듣기 싫어도 내 자리가 부하 직원들을 책임지는 자리기에 자존심을 굽히고 양해의 말들을 나열하며 상대의 자비를 바라는 것.
자기 일이라 생각하고 일하면 타인이 눈치챈다.
회사가 눈치채면 오래 일하고 싶어 하고,
동료가 눈치채면 든든해서 함께 하고 싶어 하고,
고객사가 눈치채면 믿음직스러워 다시 일하고 싶어 한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동료들에게 이 글이 어떻게 읽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주인 의식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뭔가 장황하게 흐르는 것 같은데, 바라는 바는 단순하다.
두 마디 멘트로 진심을 전한 버스 기사님처럼, 그저 내 일을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사장이냔 말을 들은 평범한 회사원처럼, 그저 오늘 주어진 여러분들의 일을 무탈하게 마쳐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부심은 대단한 것에서 나오는 것 아니라 오늘 내 하루에 정성을 들이는 것에서 나올 수 있음을 힌트 삼아 고단한 하루지만 정성을 들여보시라.
어느 누군가가 그런 당신에게 온 마음을 다해 행운을 빌어주고 있을 것이다.
유플리더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트렌디한 사람이 되도록
재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양한 잽을 날릴 것이다.
대화의 소재를 주고
사색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플위클리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