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따뜻한 인터뷰!
“우리가 2007년, 2008년에 처음 만났죠?”라는 질문에 “2007년 6월 18일에 처음 봤어.” 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딱 본부장님 다운 대답인 것 같습니다. 따스한데 정확하고, 정확한데 따스한 분. 본격적인 웹에이전시 생활을 시작하던 때 제 직속상관이었고, 결혼과 출산을 지켜보신 분이며, 세 곳의 회사에서 함께하신 분이기에 필자에겐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그러니 인터뷰이(interviewee) 대상자를 받자마자 어찌나 설렜던지요. 거의 6년 만에 뵈었지만 본부장님 모습은 그대로였습니다. 여전히 따스하시고 여전히 재밌으신데, 인터뷰를 통해 들은 얘기들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주로 우리 업계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는데 흥미진진했던 만큼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네요.
어떤 계기로 웹에이전시에 진입하셨나요?
이상진 : 대학 때 광고를 전공했는데, 소위 말하는 서울대, 연고대 출신이 아니다 보니 뭔가 특기를 가지지 않는 이상 광고대행사에 가기 어렵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출판도 같이 전공해서 관련된 책도 만들어보고 두루두루 활동을 하다가 졸업한 뒤 광고대행사 갈 생각에 어떤 기관에 들어갔어요. 그때 가르쳐 주셨던 은사님이 제일기획 국장님이셨는데, 온라인 광고를 하는 회사를 만든다 해서 같이 합류했습니다. “그래, 이 길이다.” 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쭉 에이전시에만 있다가, 여기 유플리트에 합류하기 전에는 판교에서 빅데이터 관련된 벤처에 있었어요. 지금은 다시 유플리트로 오게 돼서 웹에이전시에 합류를 했습니다.
저도 광고를 전공했고, 광고대행사에서 온라인 광고를 통해 웹에이진시로 넘어온 케이스기에 또 한 번 통했다며 혼자 반가워했습니다^^ (자꾸 TMI!)
현재 유플리트에서 영업을 하고 계십니다. 요즘 웹에이전시의 분위기나 흐름이 궁금합니다.
이상진 : 옛날에는 에이전시 이름만 얘기해도 그네들 수저가 몇 갠지 정도까지 다 알고 있었는데, 6년 이상 잠깐 에이전시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니 기존에 있던 회사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긴 한데 규모나 형태가 많이 달라져 있어요. 과거에 번창했던 회사였는데 그 위세가 사라졌다든지, 아니면 조그만 회사였는데 지금은 온전히 잘 나간다든지 그런 부침들이 있습니다. 공백도 있었고, 또한 코로나 때문에 서로 만남이 뜸해지다 보니 어떤 회사가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갠지 확인하기에는 정보의 한계가 존재하더라고요.
지금 보면 유별나게 뛰어난 회사도 없고, 유별나게 아니다 싶은 회사도 없이 다 비슷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선두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요즘엔 그게 없어요. 프라이머리 primary라고 하는, 리더라는 개념으로 불리는 회사들이 없고 제 각각의 컬러를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전에 비해서는 에이전시의 영화로움이 많이 퇴색되어 있습니다. 다들 비슷비슷한 구조의 비슷비슷한 산출물과 비슷비슷한 사람들을 데리고 굉장히 힘들게 일을 하고 있어요. 예전에 비해서 웹에이전시를 많이 찾는 게 없어져서 업계가 좋아진 것 같지 않아요. 퇴화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왜 이렇게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홈페이지나 모바일이라고 했을 때 크던 작던 구축은 보통 에이전시가 한다고 생각을 했죠. 지금은 아예 전문 핀테크처럼 ‘그냥 내가 만들지, 뭐.’ 해서 서비스 벤더들이 자기들끼리 집합을 해서 결과적으로 회사를 만들고 인큐베이팅해서 자기만의 비즈니스를 위해 직접 만드는 형태가 되었어요. 그리고 서로 필요할 때 이종 간에 결합하기도 하고요. 금융사 고객이 작은 핀테크 스타트업을 인수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비즈니스를 결합시키는 구조라서 웹에이전시가 예전처럼 “저희가 다 만들어 드릴게요. 다 서포트해드릴게요.” 하는 개념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웹에이전시들도 점차 각각의 카테고리 안에서 메인 스트림의 고객들 대상으로 비즈니스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어느 에이전시는 커머스만 하고, 유플리트는 금융권이라고 하는 특화된 영역이 있는 것처럼. 옛날에는 다 잘했는데 요즘은 특정 분야에 특화해도 잘하는, 그렇게 각각 자기들이 잘하는 영역으로 진화가 되는 것 같아요. 이런 형태로 업계가 많이 변화됐더라, 이렇게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내용이네요. 쭉 얘기를 들어보니, 저희 유플리트는 잘하고 있는 거죠?
이상진 : 현재로서는 잘하고 있다…
…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이상진 : 회사 입장에서는 금융이라는 카테고리에서 고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긴 하지만, 구성원들 입장에서는 그 익숙함이 실은 굉장히 피로도가 쌓인, 그래서 신선도가 떨어지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론칭하고 준비하면 “또 금융이야?”, “이번에 좀 다른 거, 넌 밥만 먹고 사니?” 이런 식의 피로도는 많이 쌓여 있는 것 같아요.
[유플리트 = KB국민은행] 이렇게, 업계에서도 우리 스스로도 유플리트는 KB국민은행만 하는 회사로 알고 있는데, 피로도에 약간 활기를 주기 위해 타 금융권을 간다든지 또는 같은 은행권이라도 핀테크나 인터넷전문은행을 한다든지 다른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 임원분들이 가지고 있는 전략적인 사고는 ‘KB국민은행이라는 고유의 아이덴티티는 잃지 않으면서도 고객 범위를 와이드 하게 늘리자.’입니다. 다른 은행도 할 수 있고, 구축뿐만 아니라 운영도 할 수 있는 구조로 채널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가 수주했던 프로젝트 중 케이뱅크 운영이 있는데, 새로운 고객을 만나 나름 활기 있게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나름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금융이라는, 오래되고 굉장히 익숙한 이런 것들에 대한 피로도를 좀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긴 찾아야 되겠다, 생각을 합니다.
영업이라는 게 우리가 잘하니까 KB국민은행에서 일이 계속 들어오고, 또 시기가 맞으니 하는 그런 것이 아녔네요. 말씀하신 내용들을 들어보니 여러 가지 다 생각해서 영업을 하시는 거네요.
이상진 : 너무 하나만 하는 건 위험해요. 유플리트가 KB국민은행을 십몇 년 하다 보니 KB국민은행 입장에서는 유플리트가 잘해서 하는 것도 있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유플리트와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요즘 우리는 시장 상황도 그렇고 프로젝트 구성원들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프로젝트를 균일하게 다트닝으로 관리하기가 어렵기도 해요. 어떤 프로젝트는 여러 이유로 관리가 어려워지고 퀄리티에서도 한계가 오긴 하는데, 이런 것들이 누적되다 보면 고객사도 우리에게 퀘스천이 생길 수 있어요. “잘하던 애들이 왜 저러지?”, “규모에 맞지 않게 너무 많이 하나?” 이렇게. 우리가 금융에 피로도가 오는 것처럼 KB국민은행도 우리 유플리트에 대한 피로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데에 시각을 돌려봐야 하나,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고객들이 실제 다른 필드에 있는 다른 회사들을 찾고는 있는데, 찾고자 하는 회사들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유플리트”, “그래도 유플리트” 이런 상황으로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출적인 측면에서는 KB를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끌어내고 있긴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고객이 하나로 편중되고 편식을 하는 거기 때문에 우리의 경험치를 다른 데에 알려서 그쪽에 ‘또 하나의 KB’ 같은 히스토리를 만들어야 되는 상황이에요. 올 초까지 해왔던 우리은행 전담반 운영이라든지 케이뱅크라든지 아니면 다른 금융권의 삼성카드라든지, 이러한 금융권 라인의 고객들을 더 확장시켜야 되니까 거기서 KB처럼 관계를 이어나가야 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회사의 입장입니다.
오랜 시간 웹에이전시 업계에 계셨는데, 웹에이전시만의 매력이 있다면 뭘까요? 예전에는 다양한 업계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는데, 앞서 말씀해주신 내용들에 의하면 특화된 형태로 간다고 하니 그런 매력은 사라진 걸까요?
이상진 : 표면상으로는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고 지금도 그게 가능합니다. 시장 상황이나 부서원의 환경에 따라 ‘전문화’라는 이슈 때문에 특화된 영역으로 가기도 하지만, 우리 업계가 어떻게 보면 지식이라는 형태를 생산해서 만드는 지식 제조업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자유도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나름의 캐주얼한 느낌 같은데, 아직까지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서 장비 없이 누구나 다 들어와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쳐낼 수 있는 그런 기회는 아직까지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아직까지는 긍정적이다, 생각합니다.
우리의 경쟁사는 어딘가요? 제안이나 영업을 다니시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회사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상진 : 과거에는 분리발주가 많아서 경쟁사 누구누구라고 손꼽는 곳이 있었고, 제안이나 영업 현장에서 자주 만나는 플레이어들이 있었어요. 에이전시끼리 다 붙어서 서로 경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보다 분리발주가 많지 않고 SI와 함께 통합발주로 가다 보니 SI에서 점찍어놓은 파트너, 가령 어떨 때는 인픽스, 어떨 때는 플립, 어떨 때는 네티브하고 경쟁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제 경쟁 관계가 아닙니다. SI들끼리 축이 있어요. SI에서 컨소시엄이 먼저 일어나서 만나다 보니 그 안에서 경쟁이라기보다는 서로 돕는 건전한 경쟁이랄까? 서로 선전을 하되 서로 비방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언제나 릴레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경쟁하고 있는 구도예요.
수주가 목표인 건 맞으니 SI랑 협업을 잘해서 수주하는 게 여전한 목표죠. 예전에는 공략하겠다고 서로 약점을 파고 들어갔는데 지금은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상품화시켜 어프로치함으로써 고객에게 선택받는, 업계가 공존하는 형태로 건실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어느 에이전시가 우리의 경쟁사다,라고 얘기할 만한 곳이 없어요.
여러 회사를 거치셨을 텐데, 유플리트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상진 : 최근화 대표님이 2006년도에 처음 회사를 만들 때 제가 협업을 해봤던 기억이 있고, 그때 기억으로 지금까지 쭉 유플리트의 궤적들을 가까이 지켜봐 왔어요. 과거의 모습처럼 지금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을 하는 것 같고, 항상 깨어있어요. 우리 직원들 입장에서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유플리트는 직원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고 있습니다. 항상 어떤 내용이나 과정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직원들과 공유하려는 자리들을 많이 가지고 있고, ‘리더십을 근거로 한 소통’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것 같아요.
우리 구성원들이 전체적으로 MZ이라고 하는 성향도 있고, 이전과는 다른 소양들이 있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더 다양한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공유가 되거나 공급이 돼야 될 것 같아요. 어느 특정한 기회나 기간만 얘기하는 게 아니고, 항상 그래요. 위에서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면, 중간에 있는 리더들이 계속적으로 이야기를 해주고 직원들과 교류합니다. 교류한 내용들이 또다시 위로 공급이 돼요. 피가 돌듯이 계속 자연스럽게 선순환되어야 하는데, 그러기까지는 조금 더 많인 기회나 시간이 필요할 듯 하긴 합니다.
오랜 시간 일을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후배가 있나요?
이상진 : 많은 이들이 기억에 나요. 특히 2006년도 디지털 오아시스 시절 제안팀으로 입사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굉장한 열정이 있었어요. ‘꼭 성공해야겠다. 꼭 내가 잘 돼야 되겠다.’라는 마음이 항상 깔려 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나름 유명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친구였는데, 이 친구는 아버지가 보기라도 하듯 무조건 잘 돼야 하는 게 목표였던 거예요. 동생과 원룸에서 생활했는데, 젊은 친구다 보니 아직 생활비 등이 부족하죠. 여동생이 편하게 생활하라고 원룸을 내어주고 본인은 회사에서 먹고 자며 월급이나 야근비 등을 받고, 그렇게 생활비 비용 등을 줄여갑니다. 그렇게 해서 1년 6개월을 같이 일을 했어요. 그러다 이 친구가 LG AD로 가고, 제일기획으로 갔다가 대기업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어디 가도 본인 아버지가 누구라고 얘기하지 않고 아버지가 안 계신 걸로 얘기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해서 본인 스스로 성공을 했어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 힘들게 생활했고, 어찌 됐든 어머니 건사시키고 여동생 건사시키고 대기업 취직해서 본인이 하고 싶어 했던 광고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연락이 뜸해지긴 했지만 서로 잘됐다며 응원해줬어요. 그 친구는 모든 일에 있어 굉장히 열정이 있었고 잘 웃었어요.
인터뷰 사전 질문지에 ‘유플리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가 있던데, 전 그 친구처럼 잘 웃어주는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상황이 빡빡하고 힘든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일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내 일이니 열심히 하고, 힘에 부치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손 내밀어서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했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경우엔 에단에게 얘기해서 “이건 여기까지 하자.”며 조정하거나 협상을 해요.
힘든 상황이지만 서로 챙기며 미소 짓는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회사 경영전략실에 도연님이랑 미현님이 있는데, 이 친구들이 업무적으로는 나와 크게 상관이 없지만 보면 항상 웃고 있어요. 나도 같이 얘기하다가 웃게 되고. 그런 게 되게 좋아요.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부대끼고 온 사이끼리 가슴으로 웃고 잘 노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 배를 탔으니, 한 비행기를 탔으니 가기 싫다고 내리거나 누군가를 밀쳐낼 수는 없잖아요. 목적지에 갈 때까지 잘 관계 맺고 다음 프로젝트도 같이 하고 그렇게 됐으면 싶어요.
임원의 자리는 외로울 것 같습니다. 종종 생각나는 선배나 롤모델이 있나요?
이상진 : 제가 거의 시조새니 선배가 있을 수가 없죠. 같이 시작했던 나이 많은 선배는 있지만 이 업계에서 선배를 찾아보기는 힘들어요. 동료 중에 보자면 유일무이한 존재로 앨버트가 있어요.
두 분의 케미는 필자가 오랫동안 보아와서 알고 있습니다. 두 분 성향이 정 반대 지점에 있는 듯한데, 두 분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유쾌하면서도 편한 느낌이 들어요.
이상진 : 우리 나이는 애 낳고 쫓기듯이 살고 있잖아요. 나와 비슷한 인생을 살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떻게 저렇게 객관적일 수 있지? 마치 컴퓨터에서 인풋과 아웃풋이 명확한 것처럼 어쩜 저렇게 자기감정을 1과 0으로 정확하게 내보낼 수가 있지? 싶어요. 얘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져야 해요. 일도 열심히 하지만 그 일에 대한 대가도 많이 받고.
한참이나 앨버트님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을 계속 표현하셨어요. 그중에 기억에 남는 내용을 추려보았습니다.
이상진 : 앨버트가 프로젝트에 나가면 고객사가 되게 좋아하기도 하지만 간혹 어떤 고객사나 협력사에서는 싫어하는 경우가 있어요. 왜냐면 갑질을 못해요. 예를 들어 고객이 이걸 해주세요, 하면 싫든 좋든 할 수밖에 없어요. 어찌 보면 “제가 해줄게요.” 이렇게 되는 게 이 시장 상황인 거죠. 안 해도 되는 일을 해야 되는 상황인 거예요. 그런데 PM이 그렇게 수락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기획자가 일해야 돼요. 기획자가 일한다는 건 디자이너가, 그다음엔 퍼블리셔가 일하게 된다는 거죠. 퍼블리셔가 일한다는 건 다시 개발자가 반영해야 하는 거고, 개발자가 반영한다는 건 기획과 디자인, 퍼블리셔가 다시 봐줘야 하는 거죠. PM이 오케이 하면 우리 구성원들의 시간과 공과 노력이 더 들어가게 됩니다. 앨버트는 그걸 아니까 no sign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앨버트 입장에서는 고객사가 원하는 업무를 안 하게 되지만 고객사 입장에서는 “다른 데는 다 해주는데, 얘만 들어오면 맨날 no sign이야.”
그렇다고 늘 no sign만 하는 것도 아니에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우리에게 힘들거나 문제가 되는 것들이 있을 때 나름 협상을 해요. 안 할 수는 없고 하긴 해야 하는데 “좀 이따가 합시다. 이만큼만 합시다.” 그렇게 사이즈를 줄여요. 그런데 실무 입장에서는 업무 자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a도 해야 하고 b도 해야 하니 불평이 생기기도 해요. 나름 둘을 합쳤을 때 원래의 a만큼의 사이즈도 아닌데.
앨버트님에 대한 무한신뢰와 애정이 느껴집니다. 오랫동안 마음 맞춰 일해 온 동료의식에 부러움이 밀려왔답니다.
이상진 : 사람들이 앨버트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어떤 점이 어려운지, 난 오래되다 보니 알 수 있어요. 그냥 벽이야. 산이에요. 직선으로 뻗은 산인데 서울로 가려면 어쨌든 그 산을 통과해야 해요. 이 녀석이 안 비켜주는 거야. 돌아가려면 힘들잖아. 녀석이 엉덩이 하나만 들어주면 쭉 갈 수 있는데 안 들어줘. 사람들은 앨버트가 공적으로는 참 좋은데 사람 관계에 있어서는 그런 점이 답답한 거죠. 막혀있고.
근데 난 앨버트랑 관계가 오래되다 보니까.. 산이 있어. 그래서 내가 “나 이제 지나갈게.” 얘기하면 산이 갑자기 열려서 날 지나가게 해요. 아니면 내가 홍길동을 만나러 산을 돌아가고 있는 동안에 녀석이 뭘 하냐면, 갑자기 산에서 손이 쓱 나와가지고 홍길동을 여기에 데려다 놔. 그게 사람이든 산출물이든 어쨌든 홍길동을 데려다 놔요.
너무 로맨틱한 묘사 아닌가요? 비유도 찰떡같고요. 두 분 사이를 아는 분이라면 이보다 더 두 분의 케미를 잘 묘사할 순 없을 듯합니다.
에단님과의 관계도 설명해주셨는데 유플리트의 영업을 담당하시는 두 분의 케미 또한 필자로써는 부럽더라고요. 정말 흥미진진한데 지면의 한계도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직접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질문이 몇 가지 더 있었고 답변이 너무 재미있었는데 다 실을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역시나 화수분처럼 이야기가 샘솟는 분인데 본부장님은 부정하시더군요.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교수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여쭤봤지만 손사래만 돌아왔습니다. 본사에 계실 때 이상진 본부장님과 대화해 보세요. 분명 즐거울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