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현지 시각)부터 프랑스 파리 지하철에서 한국어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매치기가 많으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인데, 이는 한국인 대상의 소매치기가 늘었다는 뜻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인 관광객이 늘었다는 뜻이 되겠다. 이전까지는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로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이제는 한국어가 추가되었으며, 기사 말미에는 ‘프랑스 내에서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드러내는 상징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적혀 있었다.
얼마 전 해외여행 중 영국의 히드로 공항을 경유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나라가 2019년부터 EU,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싱가포르와 함께 ‘자동입국 심사국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게 줄 선 후 만난 매서운 눈의 외국인 심사자 앞에서 긴장할 것 없이 지하철 타듯 전자여권을 띡 태그하면 입국할 수 있으며, 내 나라가 한국이라는 이유 하나로 내 신원이 보증받는다는 뜻이다. 이때야말로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똑바로 잘 살았구나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 여행 내내 따라다녔던 궁금증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유럽은 어디서나 인정받는 선진국인데 왜 소매치기가 많은 걸까?’
여행 책자에서도, 인터넷에 떠도는 여행 후기에서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당부가 넘쳤다. ‘가방을 뒤로 매면 남의 것, 옆으로 매면 우리 것, 앞으로 매면 내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 하니 관광 내내 앞쪽으로 둘러맨 가방과 스마트폰을 신경 쓰느라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이 보란 듯이 가방을 뒤로 돌려 매고 스마트폰을 가방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외투 주머니에 넣는 것도 위험하다 하니 여행 내내 스마트폰을 신줏단지 모시듯 가방에 봉인하고 다녔다.) 한술 더 떠 편의점 맞은편 벤치 쪽에 캐리어를 쓰윽 굴려놓고 호기롭게 편의점에서 커피 한 캔 사들고 나왔다. “우리나라는 이렇게나 안전해!” 라며 한풀이를 한 셈이다. 대체 ‘성가시게’ 소매치기는 왜 있는 걸까??!!
집에 돌아와서는 유럽에 왜 소매치기가 많은지 검색해봤다. 유럽에는 난민, 이민자와 집시가 많아 그렇다는 가정이 제일 많았는데 어디까지나 ~카더라 통신이어서 ‘아! 그렇구나!’ 단번에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문화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었다.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아직도 집단 무의식에 체면을 중시하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어 개인주의인 유럽보다 소매치기 범죄가 적다고 한다. 유럽인의 집단 무의식에는 하나님이 늘 자신을 지켜본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종교의 힘이 약해지고 그 자리에 법과 윤리가 들어왔다고 한다. 문제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이들에게 윤리의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범죄를 저질러도 죄의식이나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의 경찰관 역할을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눈이, 중세 서양에서는 하나남의 눈이 했다.’라는 문장에서 실마리를 찾았던 것 같다. (출처 https://blog.naver.com/tjdrn3307/222386900330)
아하! 내가 누구를 의식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질 수 있겠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떳떳하기 위해 선하게 살려 노력하고,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마음을 비워 해탈하려 노력하고, 자신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힘에 근거하여 열심히 살아간다. 믿음의 대상이 없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는 자만이 남의 물건을 탐하고, 실패해도 씨익 웃고 만다. 죄의식조차 없단 말에서 ‘현재만 근근이’ 살고 있음을 느꼈다.
이야기 전개를 극단적으로 확장해보면, 회사라는 조직 안에도 소매치기범 같은 사람이 있다. (유플리트를 콕 집어 얘기하는 건 아니고) 회사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뻔뻔한 사람’ 한 둘쯤 꼭 만나는 것 같다.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 “그럴 수 있지.” “어쩌겠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고 그 이상의 것은 시간이나 상황에 맡기겠단 어른스러움을 느껴서랄까? 필자는 능력도 없으면서 문제를 끌어안고 낑낑대며 사느라 여유가 없었다. 내가 다 할 수 없단 걸 깨닫고 문제를 내려놓은 시점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유가 찾아왔는데, 그래서 ‘그럴 수 있다’는 말의 너그러움과 ‘어쩌겠어’라는 내려놓음의 말을 정말 사랑한다.
그런데 소매치기범의 말은 다르다. 그가 “그럴 수 있지.” 말할 때 네가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르겠고, 일단 ‘나는’ 그럴 수 있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드러난다. 그가 “어쩌겠어” 말할 때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당사자가 그래서 어쩌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 소매치기범의 말에는 죄의식이 없다.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미숙하고 어리석은 마음이 드러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뻔뻔한 사람은 되지 말자. 소극적인 사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부려보는 뻔뻔함은 두 팔 벌려 환영하지만, 남의 권리를 짓밟고 자신의 이익만 취하는 뻔뻔함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이기 때문이다. 소매치기로 부자 된 사람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소매치기는 인생의 경로를 꺾지 않는 이상, 하루 먹고 살 푼돈만 훔치다 인생 끝날 것이다. 일하면서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소매치기하며 살면 너무 당연하게도 신뢰를 잃게 된다. 신뢰가 없으면 오래갈 수 없다. 지지해주는 동료 없이 그야말로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사람 믿을 만하지!” 프리패스되는 사람이 있다.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 중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동입국되는 것처럼. 내가 일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내게 찾아오는 사람이 되면 자신에 대한 효능감과 성취감이 크지 않을까? 저마다의 포부는 다 다르겠지만 신뢰를 얻으면 포부에 이르기 쉬운 길이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힘으로 꽃길을 깔아보자며 장황한 글을 마무리한다.
유플리더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트렌디한 사람이 되도록
재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양한 잽을 날릴 것이다.
대화의 소재를 주고
사색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플위클리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