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꽃사진만 찍어?

by 유플리트

“쫄깃한 면발 감자면, 탱탱한 면발 생생우동, 쫀득한 면발 수타면, 오동통통 너구리 ♪♬”

“촥촥촥 감겨 짜파게티, 보다 짜장면에 근접해진 짜왕, 짜짜로니, 또 진짜장. 또 진짬뽕, 오징어짬뽕, 팔도 왕짬뽕 ♪♬”

명절 연휴에 차를 타고 가며 아이가 라면 이름을 늘어놓는 랩을 따라 하는데 문득 무언가를 저렇게 외워본 지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역사적 사실을 외우고, 영어 단어와 숙어, 원소기호나 근의 공식, 삼각함수, 로그함수 등을 외우고도 팝송가사를 외울 여력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무언가를 외울 일이 없어졌다.

심지어 차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책상 의자에 앉든 꼿꼿하게 모았던 다리도 편하게 풀어졌다.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던 시절엔 두 무릎이 풀어지는 법이 없었는데 지금은 온몸이 느슨해졌다. 어깨도 허리도 무릎도 발목도 자기 편한 대로 늘어져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렇게 몸도 마음도 느슨해지는 거구나. 아이가 총명해지고 생기가 돋을수록 나의 늙어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 프사는 왜 맨날 꽃이나 나무나 하늘이야?” 아이가 초상권을 주장하고 난 후부터는 오다가다 만나는 예쁜 것들을 찍어댔다. 자꾸 자연에 눈이 갔다. SNS에서 떠도는 ‘연령대별 카톡 프사 특징’을 고스란히 따르는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 엄마도 맨날 묘하게 촌스러운 꽃사진을 올리고 이쁜 내 새끼들~이라며 정을 듬뿍 주던데, 나도 조금 더 나이 들면 꽃을 자식 삼으려나? 어느새 엄마와 감성이 닮아간다는 걸 느낀다. 나도 묘하게 촌스러워진다는 건데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어지니 다행이다.

괜찮아지는 것들이 많아지는 게 참 다행이다. 흰머리가 가득 나도 괜찮고, 실수가 늘어도 괜찮고, 아르바이트생이 불친절해도 괜찮다. 뻣뻣하게 세상을 재단하며 살던 때보다 마음이 너그러워진 지금 모습이 마음에 든다. 총명한 눈빛은 사라졌으나 어쩔 수 없지 뭐. 이제는 주름진 눈으로 뻣뻣하게 잘난 체하는 것들을 품어주며 살지 뭐.

꽃사진.jpg 60대 김 모 여사의 프사. 촌스럽지만 괜찮아.


젊은 시절에 몰랐던 게 있는데, 사람은 겉모습은 낡아지나 속모습은 깨우침으로 인해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이치들을 새롭게 깨달아 가는 재미가 있다는 것을 젊은이들은 모르겠지. 늙어가는 육신에 주목하여 별 재미없이 산다 여기겠지. 연애하지 않아도, 멋진 옷을 입지 않아도, 분위기 좋은 술집에서 왁자지껄 즐기지 않아도 사는 재미가 있다. 무엇이 날 새롭게 하고 무엇이 날 재밌게 하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본질’에 가까운 것들이 그렇다는 결론이 나왔다.


『생각의 탄생』에서 리처드 파인만이 이런 말을 했다.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존경하는 인생선배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던 고민섬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를 쓱 건져 올린다. 큰 업적이나 성취가 없는 것 같은 부모일지라도 뜻하지 않게 날 각성시키는 한마디를 툭 던진다. 그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내가 모르는 정답을 알고 있다. 진짜 어른에게서 느껴지는 통찰력은 본질을 보는데서 나오는 것 같다. “쟤가 이렇고 걔가 저래서 짜증 나. 되는 일이 없어.” 울고 불고 난리 치는 내게 “네가 지금 실패할까 봐 불안하구나.” 한 마디 툭 던져서 내 마음을 보게 만든다. 그제야 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긴장시키는 현상들을 제어해 나가기 시작한다. 나를 울고 불고 난리 치게 만드는 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건 현상이지 본질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깨우친 내가 대견해진다. 아는 줄 알았는데 아직 알 게 더 있었단 걸 발견한 날은 인생이 참 재밌단 생각까지 한다.


문득 오래전 드라마 대사가 떠오른다. 대기업 어르신의 대사였는데, 당시에도 와닿았고 지금까지도 믿어 의심치 않는 사실이다. 출처는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다.

권해효.png
마흔여덟 정도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옳은 건 뭐고 틀린 건 뭘까.
나한테 옳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도 옳은 것일까.
나한테 틀리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도 틀리는 걸까.
내가 옳은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해도 한 가지는 기억하자.
'나도 누군가에게 개새끼일 수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개새끼일 수 있다는 깨우침이 있어야만 겸손해지고 타인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늘 옳다고 생각했던 대리 시절도 좋았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생각했던 차장 시절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현상 이면의 본질이 설핏 보이는 지금이 좋다. 50, 60대가 되면 또 뭐가 보일까 기대되는 지금이 더 좋다.

햇빛이 가득한 베란다 창가에 화초를 잔뜩 들여놓고 아침마다 내 새끼들~ 노래를 부르는 엄마에게는 변덕스러운 사람들과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이 무수히 많이 스쳐갔겠지. 이것 떼고 저것 떼고 남은 게 꽃이었겠지. 심지어 남편도 자식들도 내려놓고 아무렴 어떠냐며 꽃을 사랑하는 거겠지. 엄마들이 꽃사진을 찍는 이유는 본질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서란 걸, 아이가 부르는 라면 노래가 끝날 즈음 깨달았다.




유플리더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트렌디한 사람이 되도록

재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양한 잽을 날릴 것이다.


대화의 소재를 주고

사색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플위클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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