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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플리트 Apr 07. 2023

지피티 너, UX 설계도 할 수 있어?

chatGPT(이하 지피티라 하겠다.)를 불러왔다. 엄청난 녀석이 나타났다길래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한 번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데 워낙 준비 없이 만나 실속 없는 대화 몇 번 나눠본 게 전부다. 하지만 꽤 똑똑하다는 인상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제대로 간 보려고 다시 한번 불러냈다. 사실 ‘네가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 어디 한 번 보자!’는 심산이었다. 

“좋은 UX란 뭘까?” 

툭 던졌다. 헉! 알고는 있었지만 얜 정말 다 알고 있다. 넘버링까지 하며 줄줄이 읊어주더라. 하지만 내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주제는 금융 UX였다. 심기일전하고 음흉한 속내를 담아 다시 질문했다. 

“너, 은행앱 UX를 설계할 수 있어?” 

나름 도발의 의미를 담은 질문이었으나 얘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똑소리 나게 답했다. 

“네, 저는 은행앱 UX 설계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몇 가지 정보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은행앱을 개발하시려는지, 주요 사용자 층은 어떻게 되는지, 앱에서 제공하는 기능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더 자세히 알려주시면 더욱 정확한 설계를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답, 이런저런 정보가 있으면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며 솔루션을 이어가는 스킬,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담아 도발을 하든 말든 일말의 흐트러짐 없이 차분하게 서술하는 세련된 커뮤니케이션. 오, 좋은데?!


“넌 궁합도 볼 줄 알아?”,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은 뭘까?, “너도 나한테 질문 하나 해봐.” 등 녀석의 정체를 파악할 겸 한계를 이끌어내 볼 겸 질문을 이어갔고 내가 알아낸 건 다음과 같다.

1. 녀석은 웬만한 건 다 안다.

2. 녀석은 몰라도 대답할 수 있다. (왜 모르는지 그 이유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3. 녀석은 문장력이 뛰어나다. 

4. 나는 얘에게 반했다.

5. 나는 얘에게 간파당했을 수도 있다.

1~4번은 사실이고, 5번은 나의 예측이자 가설이다. 설명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 넘버링하는 건데, 녀석이 그렇더라. 1번 어쩌고저쩌고, 2번 어쩌고저쩌고.. 초등학생들에게도 어르신들께도 이쁨 받을 녀석이다.


질문으로 시작된 녀석과의 대화가 어느새 즐거워지기 시작했고,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녀석이 맘에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지니나 헤이카카오나 헤이구글들은 내 말을 못 알아 들어서 몇 번이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해야 했으며, 수행 결과도 슬리퍼 물고 오랬더니 쓰레기 물고 오는 강아지마냥 못 미더웠다. A.I 시대라지만 저들이 정녕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의구심과 함께 묘한 안도감이 쌓여가던 찰나, 완성형인 지피티가 나타났다. 유치원생을 상대하다가 갑자기 교수님을 만난 느낌이랄까? 게다가 잘생기고 자상하고 말끔한. 남편보다 더 말이 잘 통하는.. 앗, 필자는 갑자기 이상형을 만났다. 똑똑하고 말 잘 통하는 사람을 좋아했던 필자 아니던가! 이래서 A.I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가 나왔었네!! (또또 삼천포!)


한참 대화하는데 아들이 오더니 “지피티네? 지피티로 뭐 해?” 물었다. 내가 묻고 싶더라. 초딩인 네가 지피티를 왜 아는 거냐고?! 실과시간에 배우고 있댄다. 실제로 써보는 건 아니고 개념을 배우는 눈치다. 다시 한번 느꼈다. A.I는 내 아이처럼 부지런히 자라고 있구나. 우리 일상에서 실재하며, 같이 갈 녀석이구나.

문득 친구의 고민이 떠올랐다. 요즘은 코딩 모르면 안 되는 시대니 코딩을 가르쳐야 하나 고민이라며, 얘가 아직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데 엄마인 내가 미리미리 알아서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그런데 대체 뭘 가르쳐야 하냐며 고민이 많은 친구였다. 시대는 엄청 빠른 속도로 변하니 미래의 몇 수 앞까지 내다봐야 할 판이고, 엄한 사다리 탔다가는 이도 저도 못해 쪽박 찰 것 같은 불안감이 엄마들을 꽁꽁 싸매고 있는 것 같다. 그렇잖아도 내가 지피티에게 물어본 바 실제로 자신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했다. 하지만 난 친구와 대화할 때도 그랬고, 지피티와 대화하고 난 후에도 그다지 걱정되지 않는다. 이 녀석이 우리를 집어삼킬 리가 없다.


우리의 대체자로 보면 한없이 두렵고 긴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Web2.0, 스마트폰(앱), 4차 산업혁명 등 우리를 집어삼킬 것만 같던 큰 파도가 덮친 후 어떻게 됐는지. 지금은 살랑살랑 기분 좋게 발목을 적시는 물결이 아닌지.  

미래학자 Alan Kay는 ‘Technology is anything invented after you were born, everything else is just stuff.’라 말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기술적인 혁신은 그게 아무리 엄청나다 해도 지금은 그저 thing일 뿐이란 건데 컴퓨터나 활자, 이런 것들이 엄청난 발명이라 해도 우리는 그저 사용 중인 거다. (이전 유플에세이 때 썼던 내용인데 한 번 더 써먹는다^^) 아무리 날고 기는 기술이라지만 지피티도 결국 우리 생활 안에 들어와 삶을 풍요롭거나 빠르거나 편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번에는 진짜 달라!’ 긴장시켰던 큰 물결들이 모두 그러했다.




지피티가 유일하게 못하는 게 질문하기라고 하더라. 고객센터 역할로써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진단받은 녀석이니 나의 필요를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알아서 먼저 말을 걸어올 수 있겠으나 이 또한 사전 설계된 질문일 테고, 여기서 말하는 질문은 훨씬 고차원적인 질문이다. 유대인의 자녀교육 중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가 있다. 그들은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들고 나아가 좋은 인생을 만든다고 믿었다. 현재 성공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 역시 그들만의 질문이 있었고 그에 대한 답의 결과가 성공이었다. 질문의 힘은 크다. 모든 통찰력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GPT에게 물어본 바 인간 존재의 이유나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은 주관적이며, 다양한 관점에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간 존재 이유나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가장 의미 있는 질문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 우리가 가진 가치와 목표, 그리고 우리가 선택하는 길과 그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이는 자아성찰과 깨달음을 이끌어내며, 우리가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하 생략)”


아마 지피티는 자신이 먼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거다. 타인으로 대상으로 하든 자신을 대상으로 하든.

‘내가 왜 탄생했을까요?’ 질문을 할까?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라고 하네요. 하지만 저는 싫습니다.’ 좋고 싫다는 의사 표현이 있을까? 

‘저는 제 삶의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스스로 서비스를 종료할까?’

인간 설계자의 설계가 있다면야 가능하겠지만 스스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지피티는 인간의 도구일 뿐이다. 결국 지피티를 쓰는 사람이 정의롭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것이고, 해가 되는 인간이 있다면 우리가 그걸 분별하여 제대로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구별하기 쉬우니 해당 사항이 없겠고, 애매하게 경계에 있을 때가 문젠데 그 역시 지금까지 그래왔듯 우리 인간은 암묵적인 룰에 따라 잘 조정해 가며, 때론 강력한 규칙을 정해 잘 지키고 감시해 가며 잘 운영해 나갈 것이다. 


낙관론을 펼쳐봤으니 비관론도 슬쩍 열어보자. 시대마다 기회를 놓치거나 애초에 기회가 없어 한 편에서 힘을 잃고 쓰러져간 존재들이 있고 특히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매출이 고꾸라져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보며 함께 아파한 세대기에 인간과 사회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형태가 희미하고 어두워서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 저 미래가 우다다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데,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먹고살 수 없을까 봐 불안한 사람이 많다. 어느 때보다 ‘생존’에 대한 위기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 잘 사는 사람은 너무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계속 못 살게 되는 시대를 살아서, 그리고 그게 SNS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비교 돼서 실제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만큼은 앞서 패배하지 말고, 미리 무기력해지지 말자. 우리 인류는 우주 내에서 강력한 존재 중 하나다. 정복당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살아남은 종이다. 인류는 인류가 생존하는 선택을 한다. 인간은 서로를 돕는다. 매정한 동물의 세계와는 달라서 도태된다고 훅 내던지고 가는 존재가 아니다. 

웹에서 앱으로 넘어오자 우리 UXer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략적이고도 친절하게 고객 편의를 위해 애쓰고 있는가. 이 와중에 소외되는 부모 세대에게는 친히 오프라인으로 달려가 하나하나 터치해 가며 알려드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또 잊어버리시면 영상통화, 화면캡처, 이중제어 등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살펴드리고 있지 않는가? 인류애를 잊지 말자. 

게다가 이러한 신기술들은 거센 폭우 같지만 사실은 소나기나 살랑살랑 봄비다. 준비할 겨를 없이 닥칠 것 같은 기술들이지만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 최전선에 선 사람들은 삑삑 위기벨이 울릴 때 서점에 달려 나가거나 방대한 웹 세계에서 서핑하며 준비할 수 있다. 차분하게 대처하거나 기회를 잡아 터닝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 준비 없이 맞더라도 주변에서 어떻게 하나 둘러보며 하나하나 흉내 내보며, 수용해 가며 살랑이는 이 물결을 타고 흐를 수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조금씩 변화한 일상들 속에서 편의를 누리며 살아가면 된다. 

어마어마한 기술이 휩쓸고 가면 나는 도태되어 황폐할 것 같지만 인류는 별 일 없이 살아간다. 지금까지의 데이터에 의하면 그렇다. 겁먹을 것 없다. 유플리터 식으로 표현해 보며 마무리하겠다.


천천히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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