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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플리트 Apr 14. 2023

냉정하지만 따뜻한 UX

회색 글들은 건너뛰어도 좋다. 바쁜 이들에겐 사족일 수 있으니 바로 검은 글들부터 보시라.


얼마 전 매력적인 사람을 알게 됐다. 

세상을 보는 눈이 냉철한데 그가 한 말을 듣고 나면, 혹은 그가 서술한 글을 읽고 나면 마음에 남는 건 온기다. 어찌나 매력적인지 참으로 오랜만에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24년 차 기자이자 앵커인 그가 쓴 ‘따뜻한 냉정’을 읽고 난 후 책 제목 참 잘 뽑았단 생각을 했다. 따뜻하다, 냉정하다, 이 두 개의 상반된 개념이 함께 묶여 있으니 읽기 전엔 흥미를 돋웠고, 읽고 난 후엔 인간이 이렇게 따뜻하고 바를 수 있구나 감탄했다.

제목에 이끌려 무심코 집어 든 책이었으나 서두를 읽자마자 단번에 매력을 느꼈고, 구절구절마다 필사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람의 시각이 탐났고, 이 사람의 인간됨이 탐났고, 이 사람의 진실됨이 탐났다. (단 한 권의 책으로 사람을 사로잡다니!)


이 책에서 서술된 소재 2가지를 엮어서 유플리더와 ‘천천히 서두르다.’란 개념을 함께 환기하고 싶다. (‘천천히 서두르다.’는 개념도 ‘따뜻한 냉정’처럼 저마다의 시선에 따라, 상상에 따라, 의도에 따라 변형, 확장, 융합이 가능해서 유희하기 딱 좋더라.)

‘아프니까 청춘?’과 ‘나는 오프라인이 싫어요!’라는 소제목으로 풀어낸 이야기 두 개를 내 맘대로 엮어서 내 의도에 따라 짬뽕하여 쭉 서술해볼까 한다. 그러니까 이어질 글들 중 있어 뵈는 것들은 박주경 기자님의 글이고 그냥저냥한 것들은 필자의 글이란 뜻이다. 발췌보다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형태를 취한 까닭은 그의 글이 평소 내가 했던 생각들과 너무나도 같아서다. 그의 글을 통째로 옮겨 담으면 유플위클리가 아니니 “맞아! 나도 그 생각했는데 네가 먼저 말했네!”라며 내 맘대로 그의 단어와 문장과 구절들을 차용해 글을 이어보겠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어르신들은 우리더러 열정이 없고 욕심만 많다고 하지만 지금 시대가 퍽퍽하단 사실은 인정하실 거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낭만적인 구호가 아파도 너무 아픈 청춘들에게 표적이 되어 돌팔매를 맞고 있다. 아픈 청춘이 힘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할 땐 아름다운 말들이지만 이미 지난 청춘들이 “나도 아파봤는데 너희만 유독 칭얼댄다. 그저 버텨내야지 무슨 답이 있겠느냐?” 말하면 싸우자는 거지.

통계만 봐도 지금 청춘들에게 현실은 퍽퍽하다. 아니, 전 세대에게 가혹하다. 어두운 와중에 따뜻함은 놓지 않는 화법을, 진정한 공감을, 따뜻한 냉정을, 그대로 옮겨본다.



2018년 가을 어느 날, 내가 진행하는 아침뉴스에 ‘상반기 청년 부채가 59조 원을 넘어섰다’는 내용의 리포트가 방송되었다. 만 19~29세 청년층이 각종 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그만큼 된다는 것이다...(중략)...전 연령층을 통틀어 유독 20대에서만 파산 건수가 증가했다는 분석은 앵커로서 기사를 소개하는 심정에도 어쩔 수 없는 동요 같은 것이 일게 된다. 그날 그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썼던 방송 멘트는 다음과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했는데, 아픈 건 둘째치고 당장 이 빚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비 겨우 감당하고 나면 취업이 안 돼서 또 주거비와 생활비 빚을 지고, 취업이 된다 한들 주로 비정규직이다 보니 그 월급으로는 빚을 갚기가 힘들고… 이렇게 해서 청년 부채는 상반기에 59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59조.. 더 이상 공허한 위로 같은 걸로는 청춘들을 달랠 수가 없습니다.”



빚진 청춘에게 네가 문제라며 비난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처지라면 이건 사회적으로 뭔가 잘못 돌아가는 거 아니냐며 ‘함께’라는 온기를 나눠준다. 비난과 정죄의 말을 담아 삿대질하는 손가락이 아니라 공감이 담긴 말로 감싸주는 손길이 느껴진다. 특히 예민할 대로 예민한 대한민국에, 지칠 대로 지친 현대인에게 필요한 위로와 공감이다.


나는 오프라인이 싫어요!

접촉이 사라진 무인 서비스를 유인 서비스보다 더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전문가들은 이를 언택트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그런데 비대면 시스템이 인간관계의 본질을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이미 젊은 세대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전화를 걸어 육성을 주고받는 것보다 카톡을 선호한다. 심지어 콜포비아(전화통화를 어색해하거나 두려워함)가 급증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젊은 세대를 무턱대고 호통치는 것도 불편하나 ‘서로에 대해 적절히 무관심한 게 예의’가 되어가는 현상은 걱정이 된다.

박주경 기자는 무관심은 가장 무서운 사회질환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2019년 초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 월세방에서 80대 노모와 50대 딸이 질식사로 숨진 사건을 예로 들며, 그들의 존재를 몰랐던 이웃들, 검진안내문을 우편으로 보내지 직접 찾아가 처지를 살피지 않는 관할 보건소와 복지 담당 공무원들 모두 ‘이 모녀를 직접 만난 적 없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사람이 사람의 형편을 살피는 일에는 확실히 대면만 한 게 없다며, 사회는 특히나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대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택트 시대의 최첨단 기술 이면에 복지사각지대가 존재함을 볼 줄 알고, 나아가 사무실에서도 우리가 하는 일에서도 소외당하는 사람이 있음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기술에 ‘사람과 사회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과 통찰’이 담겨야 하며 그게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랑하여 직업으로 택한 ‘UX’ 역시 본질적으로는 사람을 향해야 의미가 있고 발전이 있으며, 칭찬을 받고 상도 받는 거 아니겠는가? 언택트를 전략적으로 받아들이되, 인간을 배제하는 기술이 아닌 지식과 경험 없이도 누구나 이용가능한 배려를 담아야겠다. 일을 덜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언택트를 활용해야겠다. 오프라인이 싫어지는 기술로 가기보다 오프라인 활동이 더 활기차지도록 활용하는 기술로 가야겠다.


40대 중후반 선배들은 젊은 시절에 전화나 편지로 소통했다. 고백하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상대편의 가족 중 누가 받을지 모르는 전화이기에, 게다가 시간에 비례해 요금이 나가기에 다이얼을 돌리기 전에 해야 할 말을 골라야 했다. 편지는 더욱더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며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야 했다. 전화 통화 후나, 답장 편지기 오기 전은 어떤가. 상대가 내 메시지를 수신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상하고 예측하고 대응하느라 되새김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침묵 속에 있기 쉽지 않다. 1이 사라지면 알 수 있는 수신 여부, 침묵할 틈 없이 즉각적으로 주고받는 말들.. 카톡 말고 전화하거나 편지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해야 할 말을 고르고 골랐던 정서, 내 글에 담긴 의미를 다시 돌아보고 자성하는 태도가 지금 필요하지 않나 싶은 거다. 말이 멈춘 상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삶이 가치들이 분명히 있다. 날 선 채로 사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 서로에게 속하여 교제하고 싶은 속내, 미숙함에 대한 관대함이 되살아나야 사무실이, 사회가, 기술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천천히 서두르자.

따뜻하고 냉철한 사람은 ‘인간을 향한 본질’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에서 탄생하고 ‘사색하는 힘’에서 길러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에만 몰두한 채 바쁘게 살다 보면 사람이 A.I화 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소개했던 광고인 박웅현님은 그 바쁜 광고 생태계 속에서도 6시 퇴근을 칼같이 지켰다. 좋은 광고에는 인문학적 시선과 식견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그 시간을 벌려는 노력이 아녔을까? 우리 UX 또한 기술의 영역에 한정해서는 안된다. 유플리더는 그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포용이 있어야 한다. 이 어수선하고 혼란한 와중에 본질을 구별하기 위해 시선을 앞뒤옆으로 두루두루 두어 꾸준히 천천히 살필 줄 알되, 도움이 되는 기술은 속히 학습하자는 의미에서 ‘천천히 서두르자.’는 해석을 새롭게 해 본다. 본질이 보일 때까지 고민하자. 깊이 생각하자. 집요하게 꾸준히 장르 없이 마구마구 가지치기 하자. 그리하면 세상이 놀랄 UX가 나오지 않겠는가?!

따뜻하고 냉정한 Uxer들이 넘쳐나는 나이스한 유플리트가 되길 응원하며 이번 주 유플위클리를 마무리한다.



유플리더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트렌디한 사람이 되도록

재치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양한 잽을 날릴 것이다.


대화의 소재를 주고

사색하게 하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유플위클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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