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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플리트 Aug 25. 2023

우연히 찾아온 불행

어제는 저녁 식사 후 선선한 바람을 만날 겸 산책을 나갔습니다. 갑자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비야? 하는 순간 세찬비가 되어 쏴아~ 쏟아졌어요. 다행히 바로 앞에 벤치와 그늘막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산책하던 무리들이 급히 그늘막으로 모여들었죠.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인데 문득 웃음이 나더군요.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데, ‘우연히’ 만난 비가 반가웠던 거 같아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중학교 동창생을 지하철역에서 만났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반가워, 비. 출처 : 게티이미지>



필자는 우연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새가슴 특유의 감성이 있는데, 웬만한 건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편이죠. 특히나 일할 때 그래요. 그래서 한창 일에 몰두해 살았을 때는 ‘우연 =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 예외 사항은 뭐든 다 해결해야 할 문젯거리였죠. 지금은 살만한 가 봐요. 우연이 이벤트나 서프라이즈나 선물처럼 느껴지다니. 마음이 옹졸할 땐 그 무엇도 다 골칫거리였는데, 마음이 편해지고 열리니 살 맛이 납니다. 더더더 활짝 열어야겠어요.


문득 인생의 디폴트값은 우연이란 생각이 드네요. 스스로 선택하고 만나고 취하는 것 같아도 돌아보면 모든 시작은 우연인 것 같아요. 내 의지가 발동되기 이전에 내 삶에 굴러들어 온 것들, 혹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중에 무언가가 내 의식을 잡아끌면 꿈이 되고 사랑이 되고 그러다 소망한 만큼의 좌절과 사랑한 만큼의 아픔도 맛보게 되고. 

필자는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말의 이면에는 ‘나에겐 좋은 일과 사람만 찾아와야 한다.’는 전제가 읽히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때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궁금하긴 했으나 나에게 일어나면 안 될 일, 까지는 아니었죠. 어느 순간 느꼈던 것 같아요. 남들에게 찾아갈 불행이 나에게도 올 수 있다는 걸, 남들이 느끼는 행복을 나도 느낄 수 있다는 걸. 나도 랜덤의 한 부분이라는 걸. 그래서 어린이 인생의 디폴트값은 행복이라 마냥 행복했으면 좋겠고, 어른 인생의 디폴트값은 불행이라 그걸 감안하고 씩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앗, 그렇다고 우울하게 살잔 뜻이 아니에요.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본값은 불행, 어감이 영 그렇다면 고행 정도? 그렇게 깔고 가자는 거죠. 물론 일생일대의 큰 좌절과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 할 유플리더분들은 없겠죠?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불행과 고행의 범위는 일상에서 누구나 만날 법한 자잘한 것들입니다. 이 정도로 주파수를 맞추고 본격적으로 필자가 하고픈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어요. 내 안의 헐크를 호출하는 존재들이죠. 내 지성과 교양을 총동원해도 미쳐 날뛰는 증오와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어요. 왜 하필 내 인생에 그런 사람들이 찾아왔을까요? 내가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나름 착하고 진실되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왜 그런 사람이 꼬이는 걸까요?

랜덤입니다. 나의 무엇이 원인이 되어 그런 인간이 결괏값으로 주어진 게 아니란 뜻이죠. 그냥 우연히 내 인생과 그의 인생이 겹쳤을 뿐이에요. 안타까운 건 나에겐 그를 고칠 힘이 ‘거의’ 없습니댜. 


골치 아픈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장기적인 변화는 전혀 일으킬 수 없습니다. 인생은 당신이 그 골치 아픈 사람들의 돌발 행동들을 조절하라고 보낸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보낸 것 같습니다. 짜증 나고 골칫거리인 사람들을 상대하라고 인생이 주는 단순한 공식이 있습니다. ‘사랑+기도=승리’라는 간단한 방정식입니다.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통하는 말이지만, 기도를 바람(wish)으로 대체한다면 모두에게 통하는 이치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말로 찌르고 상처를 주고 조종하는 말을 해본들 새사람이 되지 않아요. 

누구나 사랑스럽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사람도 있고요. 살아보고 들어본 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충족되지 않은 경우 엇나갑니다. 나를 힘들게 한다면, 힘든 내가 아니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연민, 긍휼, 자비 등의 미덕을 자극하는 점이 있을 거예요. 상대방이 불쌍해지면 그때 마법처럼 문제가 해결됩니다. ‘인정받고 싶구나. 사랑받고 싶구나. 그런데 방법을 너무 모르는구나.’ 안타까워지기 시작하면 조금 더 나은 내가 그 사람에게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흘려보낼 마음이 생깁니다. 

<가시 안에 연약한 부분이 감춰져 있지요. 출처 : 게티이미지>


직장에서 관계로 인해 힘들 때가 생기더라고요. 맞서기도 힘들고 피하기도 힘들어 끙끙 앓을 때가 많죠. 그래서 모든 관계는 랜덤이며, 기왕 찾아온 (이상한) 사람을 내 인생의 손님으로 생각하고 잘 대접해서 보내자 해보자고 제안해 봅니다. 내 스펙트럼 밖에 존재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는 법인데, 내 스펙트럼 안에 끌어들이려 노력할수록 분노만 커집니다. 그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저 인정할 수밖에요. 가여운 그 사람 인생이 언젠가는 활짝 피기를, 큰 사랑을 맛보고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돈이 들지 않잖아요. 해줍시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해주겠어요. 그리고 내가 베푼 사랑을 누군가가 나에게 베풀어주겠죠. 나 역시 누군가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로 자라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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