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biz Consulting Div. 댠
우리가 디지털 서비스와 커뮤니케이션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단순히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일례로, 언제부터 딱딱했던 은행 앱이 우리한테 인사를 시작했을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로 메뉴를 나열해놓고 알아서 찾아 써야 했던 그들이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고 하루를 파이팅하라고 응원해준다.
사람과 사람의 의사소통에 비언어적 요소와 언어적 요소가 있듯, 서비스디자인도 마찬가지다.
UX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비언어적인 요소(사용성이나 눈에 보이는 UI 디자인)는 웬만해서는 사용자의 경험을 해치지 않는 형태로 상향 평준화됐다.
하지만 언어적 요소는 어떨까? 톡톡 튀는 UI와는 달리 딱딱한 알림 문구, 비슷비슷한 인사말, 간혹 보이는 문어체인지 구어체인지 모를 모호한 문장들.
'어떻게 생겼냐'는 이 글의 제목은 비언어적 요소가 아닌 언어적 요소의 관점에서 썼다.
우리는 주로 언어를 통해서 사람들과 상호작용 한다.
웃으면서 정중한 말투로 메뉴를 묻는 음식점 직원을 보며 친절하다고 생각하고, 살짝 자른 머리를 친구가 알아보고 칭찬이라도 해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반면, 길을 가다 시비가 붙어 욕을 하는 아저씨를 보면 덩달아 불쾌해지기도 하고, 직장에서 불만만 늘어놓고 명확한 수정사항은 말해주지 않는 상사 때문에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주변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상황에 따라 개인의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상호작용은 사람에서 디지털 서비스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킨너렛 이프라의 <마이크로 카피> 책에 의하면, 사람들이 컴퓨터를 다룰 때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인사를 건네는 서비스에 친근함을 느끼고, 주어진 태스크를 완수했을 때 잘했다는 칭찬을 기대한다. 채널로부터 긍정적이고 온화한 피드백을 받았을 때 사용자는 더욱 태스크에 몰입해서 잘 해낼 수 있게 되지만, 반대로 상식적이지 않거나 예상하는 방식대로 동작하지 않으면 화가 나거나 실망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터페이스를 사람처럼 느끼게 만드는 주요 요소가 바로 '언어'이다.
킨너렛 이프라의 <마이크로 카피> 책에서는 보이스 앤 톤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하나의 주제를 던져주고 10명에게 말을 해보라고 하면 10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각자의 성격, 사고방식, 경험, 목표에 따라 쓰이는 단어, 문장, 말투나 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브랜드나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정보를 설명하더라도 각각의 특성이 드러난다.
아래는 애플과 삼성 각각의 홈페이지에서 매장 위치를 안내하는 화면이다.
애플은 '패션과 문화의 거리, 가로수길의 중간쯤'이라는 어떻게 보면 모호하지만 일상 속 대화에서 쓰일 법한 말로 매장 위치를 표현하고 부가적인 설명도 완전한 문어체로 쓰여있다.
반면 삼성은 잘 정리된 문서처럼 항목에 따라 구분된 정보를 제공하고, 매장 방문 전 주의사항을 명확하게 안내한다.
이처럼 각 브랜드의 가치와 캐릭터를 정의하고 그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언어를 일관성 있게 규정하는 기준이 보이스 앤 톤 디자인이다.
브랜드가 사람이라면...
보이스 앤 톤 디자인을 규정하기 위해 브랜드를 정의하는 단계 중 의인화를 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언어를 규정한다고 해서 말투만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김새나 성격은 어떨지, 주위 사람을 대하는 방식, 유머감각, 옷 입는 스타일, 연령대, 취미 등 구체적인 사람의 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때, 이 브랜드의 의인화된 상이 사용자의 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비슷한 기능의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브랜드(서비스)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사용자와의 관계는 확연히 달라진다.
똑같은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사용자는 브랜드에 따라 친구나 멘토로 느낄 수도 있으며, 엄격한 관리자 또는 신뢰도 높은 개인 비서로 여기게 될 수도 있다.
문자나 메신저를 통해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문어체와 구어체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통한 의사소통에 있어 대화형으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도 놓치면 안 되는 요소다.
<마이크로 카피> 책에서는 음성과 언어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생겨난 '대화형 글쓰기'라는 새로운 대안을 이야기한다. 아래는 일반적으로 잘못 쓰이기 쉬운 문장들을 대화형 글쓰기로 바꾼 예시이다.
걸고 싶으신 전화번호를 입력하세요. → 몇 번으로 전화를 거시겠어요?
인증 목적을 위해 귀하가 제공한 이메일 주소로 이메일이 발송됩니다. → 인증 메일이 이메일로 전송됩니다.
선호되는 결제 방식을 선택해 주세요. → 어떻게 결제하시겠어요?
대화형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진짜 우리가 대화할 때를 생각하면 쉽다.
최대한 자연스럽고 즉흥적으로.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때론 직관적인 질문 형식으로 사용자의 행동을 이끌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공급자가 원하는 방향으로(유료나 구독형 서비스) 사용자에게 제안하는 페이지에서, 그 제안을 따르지 않는 사용자로 하여금 바보같이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문구를 사용한 사이트 모음 아티클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급자가 원하는 방향대로 행동하지 않는 고객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사이트에 대해 사용자는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바보로 만들어버렸던 그 감정을 기억하고, 대체재가 있다면 굳이 그 서비스를 다시 찾지 않을 확률이 크다.
후킹 하기에는 좋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비스 이탈을 불러올 수도 있는 위험한 방법이다.
아래 이미지는 Copy writer와 UX Writer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줄의 Use sexy words to attract customers와 Use simple words to explain things라는 문장에서 차이점이 명확하게 느껴져 마음에 와 닿았다.
(Ref. How to build a better product with UX writing - Anastasiia Marushevska, Medium)
우리는 짧은 순간에 사용자를 낚아채기 위한 후킹 메시지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유효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런 흐름의 좋은 사례는 SKT의 고객언어연구소이다.
그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과도한 영어 약자나 어려운 전문 용어 등 '통신 외계어'를 순화한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단어로 바꾸어 홈페이지는 물론 고객에게 직접 발송되는 고지서나 문자메시지에도 적용했다.
(Ref. https://www.sktinsight.com/105027)
구글의 한 UX writer에 따르면 UX는 Research, Design, Content Strategy가 뒷받침한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 Wireframe을 그릴 때 도형과 선의 배치, 또는 버튼을 설계하는 데 힘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은 가이드들이 탄생했고 UI Design은 상향 평준화되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주축은 결국 언어다.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소홀한 서비스는 아무리 화면을 잘 꾸민다 한들 의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제는 콘텐츠와 UX Writing전략이 로열티와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이 글은 킨너렛 이프라의 <마이크로 카피>라는 책을 읽고 참고해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