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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왕 May 11. 2023

부유한 금수저 집안에서 가난한 흙수저 인생으로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데...

태생부터 금수저였던 여의도 부잣집 아들내미


내 고향은 서울, 정확히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이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지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굉장히 부유하였는데, 그 당시 잘 사는 사람만 모인다는 여의도에서도 소위 1티어에 속할 정도로 잘 살았다. 사실 그 모든 부의 원천은 나의 친할아버지였다. 여기서 잠깐 할아버지에 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젊은 나이에 미군부대에서 통역 일을 하셨다. 하지만 전쟁의 여파로 적의 포탄에 맞아 20대 젊은 나이에 한쪽 팔이 없어지는 아픔을 겪으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소위 남들한테 '팔X신' 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셨다. 



결국 할아버지는 개인사업을 통해 실로 막대한 부를 이루시고 자수성가하게 된다. 특히 1970~80년대에는 각종 빌딩과 백화점, 호텔 등을 인수하며 임대수익을 올리셨는데 그 당시 월 임대수익만 몇억 이상이었다. 할아버지는 현재의 화폐가치로 따질 경우 5천억 대 이상의 부를 일구신 뛰어난 분이셨고 자식들에게도 그 재산을 일부 물려주셨다.



따라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며 자랐다. 아직까지도 친구들에게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면 굉장히 신기해한다. 예를 들면, 우리 집에는 소위 드라마 상에서 부잣집에만 나온다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함께 집에 거주하셨고 많은 가사일들을 해주셨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그 당시 돈으로 월 몇백만 원하는 유치원을 2곳이나 다녔다.



부유했던 어린 시절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각종 특이한(?) 과외를 받았다. 나열해 보자면... 집에서 각종 실험도구를 활용한 과학실험 과외, 현직 농구선수한테 직접 코치 받는 농구 과외, 한자를 쓰고 읽는 서예 과외, 30분당 레슨비가 100만원이나 되었던 바이올린 과외 등등이다.



나는 3.8kg의 우량아로 태어났고 엄청난 식성을 자랑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에 키가 또래들 보다 컸고 공부와 운동도 잘하는 만능 어린이였다. 가뜩이나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어린이는 늘 자신감이 넘쳤고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학교에서도 그냥 내가 짱이라고 생각했고 싸움질도 일삼았던 악동이었다. 하지만 나름 화려했던(?) 그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게 살아가던 나의 유년시절에 갑자기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 집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치매와 건강 악화로 인해 쓰러지셨고 경영자가 부재하니 온갖 문제들이 연달아서 터지기 시작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데... 그 많던 재산은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이전에 엄마로부터 할아버지가 거주하신 단독주택에 도둑이 들어서 돈과 금품을 훔쳐 가고, 호텔 인수 과정에서 몇10억대 사기도 당한 적이 있었다고 들었지만 이처럼 심각하진 않았다.



우리 집안의 사업은 경영자의 부재, 대량의 부동산 거래 사기, 연대보증 등의 악재가 연속으로 겹치면서 망하기 시작했고, 돌려 막기 식의 재산 처분이 이뤄졌다. 그 당시 아버지 또한 할아버지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진행하였기에, 우리 집도 그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나는 후에 이런 단편적인 악재를 떠나서 엄마로부터 우리 집안이 망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의 '자식 교육' 이었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팔을 잃으셨지만 자식들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고, 거의 모든 일들을 도맡아서 하셨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자식들을 오냐오냐 키웠다. 자식들이 해달라고 하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을 다 해주셨고, 잘못이 있어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소위 후계자 수업과 경영자 수업은 전무하였다.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회사 경영에 대한 기본 마인드가 부재하였고, 결국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어느 누구도 해결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사업경영에 대한 마인드셋과 자녀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어찌 됐든, 우리 집은 이제 더 이상 서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부동산을 정리하고 안양 평촌의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이때가 정확히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무렵으로 내 나이 12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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