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페가 다시 오기 싫어진 이유
맛있었고 친절했다.
2주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루 종일 홍대를 걸어다니고서 마주친 만원버스. 흔들리는 버스에 서서 몸을 맡기니 피로가 2배가 되었다. 버스는 집 근처 역에 나를 내려주었고, 나는 어디든 주저앉고싶었다. 동시에 눈이 마주친 나와 친구는 동공으로 택시를 말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다리를 대롱거리며 앉았는데도 서있는 것 같다며 서로의 다리를 불쌍해하고 있을 때 택시가 도착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본 적은 없지만 이런 기분이겠다 싶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택시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온 몸을 던져.
우드득 뻑.
치킨 뜯을 때 나는 소리였다. 바삭한 치킨날개를 집고 접혀진 사이를 펼치면 연골 사이에서 나는 찢기는 소리. 그 소리는 당연하게도 사람 발목에서도 날 수 있다. 별로 알고싶진 않았다. 제대로 엎어졌다. 그마저도 택시가 없었다면 나는 얼굴이 아스팔트에 갈렸을 것이다. 처음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넘어진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라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하하하..하하하...아허허헣 아픔이 찾아왔다. 일요일 밤 갈 수 있는 병원이라곤 응급실밖에 없다. 인대 파열로 기브스를 선물받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목발짚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우리는 보통 겨드랑이로 기대어 목발을 짚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목발의 핵심은 손이다. 손과 팔의 힘으로 나를 들어올려 걷는 것이다. 그러니 목발을 사용하는 건 곧 두개의 팔과 한개의 다리로 걷는 것이다. 한마리의 오랑우탄처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응급실을 나간 나는 다시 택시를 불렀다. 카카오택시와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다.
여튼, 이 이야기가 카페와 무슨 상관일까.
아무 상관 없다. 카페를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는 말을 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넋두리를 늘어놓게 되었다. 오늘은 비가 올랑말랑 흐릿한 일요일, 그래도 주말이라고 어딘가를 나가고 싶어졌다.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에 통창이 커다랗고 바다가 보이고, 온통 책들로 둘러싸여있을 수 있는 카페가 목적지였다. 택시를 타고 가다 보니 몇개의 빗방울이 창문에 묻었다. 오늘은 비가 올랑말랑 흐릿한 일요일, 나 말고 200명정도가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내가 아는 카페 중 가장 거대한 그 카페엔 자리가 없었다.
나는 책을 읽고 싶었고 같이 온 친구는 강의가 듣고 싶었다. 우리는 다시 카페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다. 중요한 것은 2가지. 너무 좁지 않은 테이블이 있을 것, 앉기에 편안한 의자가 있을 것. 기왕이면 달콤한 디저트가 있다면 +1점! 새로운 목적지는 3번의 신호등을 건너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인대가 파열됐다. 야속한 신호등은 22초를 표시해놓고는 1초씩 줄어들지 않고 2초씩 줄어들었다. 7, 5, 3, 근래 최고의 속도를 낸 나는 지쳐버렸다. 원하는 건 하나. 카페에 빨리 도착하는 것.
그러나 오늘은 비가 올랑말랑 흐릿한 일요일. 우리가 검색한 카페는 그들도 검색한 카페였다. 인테리어가 하얀 그 카페는 멀리서 봐도 까만 사람들의 머리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럴 때 가장 좋은건 여길 오며 봐두었던 비어있는 그 카페를 가는 것. 친구와 나는 재빨리 경로를 틀었다. 이 카페가 이 자리에 있음에 감사해지는 순간이었다. 차분한 음악소리가 들렸고 큰 아치형 창문에는 공원의 호수가 보였다. 나이스. 시킨 메뉴가 심지어는 맛있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영수증을 찍어 네이버 리뷰로 최고의 화답을 하였다. 카운터에 소개된 차 메뉴들을 보며 다른 친구도 데려오겠노라 결심했다.
모든게 완벽한 이순간 한장 한장 책을 넘기며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시작할 뻔했다. 스피커에서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이른 크리스마스 노래를 열창 중이었다. 아름다운 애드립이 이어지는 그 때, 노래가 끊어지며 버퍼링이 걸린 동영상처럼 아리아나는 디지털 성대결절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산타 ㅌ..ㅌ...ㅌ...엘미 이퓨 리..ㄹ...ㄹ.. 데얼.
혹시 인터넷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인강쌤의 습관적인 헛기침 소리를 한번이라도 신경쓴 그 날은, 인강 듣기는 다 잡친 날이다. 선생님이 말하는 중요한 이야기들은 모두 내 귀를 스쳐 지나가고 오로지 나의 달팽이관에 남는 것은 "크흠" 밖에 없는 것이다. 이걸 카페에서 다시 경험할 줄이야. 이후 등장하는 감미로운 목소리의 가수들은 나를 약올리기 시작했다. 모든 버퍼링은 가수들이 가장 열창하는 후렴구에 배치되었다. 그 이후로 책의 단 한글자도 읽지 못한 나는 이 카페는 다신 오지 않겠다 생각했다.
맛도 있었고 뷰도 좋다면서 고작 그 이유로 카페를 오지 않겠다는 내가 쪼잔해보일 수 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이유에 이런 마음을 먹어버린 내가 나도 황당하다.
그간 딱히 커피가 맛없어도 디저트만 맛있으면 됐지라고 생각했고, 디저트까지 맛없어도 뷰만 좋으면 됐지 라며 누군가 남긴 욕 위로 "좋았어요 :)"라는 리뷰를 남기던 내가 스스로도 새로웠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왤까. 나는 왜 이런 별거 아닌 이유로 다신 방문하지 않겠다 다짐까지 해버린걸까.
멍하니 책을 바라보다 깨달았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카페를 온다. 커피 자체가 먹고 싶어서, 디저트 자체가 먹고 싶어서 일 수도 있다. 그치만 다시 생각해보자. 굳이 커피가 먹고싶어서 디저트가 먹고싶어서 여기를 올까? 배달도 잘되는 이 시기에, 버튼만 눌러주면 네스프레소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선물받은 최애 머그잔에 커피를 담아주는 이 시기에? 오로지 그 이유가 아닐 수 있다. 근래 당신은 어떤 이유로 카페를 갔는가.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러.
가족들과 맛있는 걸 먹으러.
오랜만에 좋은 뷰를 보머 멍을 때리러.
집에서 하기 답답한 어떤 일을 카페에서 하러.
가령, 책을 읽으러.
커피도 디저트도 맛이 있건 없건 내가 책을 읽는 걸 방해하진 않았다. 불편한 의자는 오히려 내가 책을 읽기 좋게 만들었다. 푹 꺼진 편한 쇼파같은 의자였다면 나는 책상에 책을 올려두고 읽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오롯이 책만 읽을 생각이었다면 왜 굳이 도서관이 아닌 카페를 왔을까. 커피를 내리는 고소한 냄새와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말소리는 나를 집중하기 좋게 만드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한의 침묵을 오히려 불안해하는 편이다. 내가 카페에 온 목적은 책을 읽으러였고, 이 카페에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책을 들고 카페 찾기를 좋아하는 나는 따라서 이 카페를 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손님은 정말 다양하다. 카페를 선택하는 이유도, 이 카페가 단골이 되는 이유도, 이 카페를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선정하는 이유는 더 다양하다.
모든 카페나 가게가 손님들의 다양한 이유나 욕구에 맞춰 운영하기란 사실상 0%에 가깝다.
글을 쓰며 내가 한 생각은 우리 가게가 단골이 되거나 금지구역이 되는 이유는 꼭 내가 예상하는 그 이유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마케터로 지내며 그간 생각해보고 예측하려 애썼던 고객들의 마음이나 행동이 전혀 들어맞지 않았을 수 있겠단 생각이었다. 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카페 운영을 잘 하기 위한 첫번째 행동은 무조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운영되는 카페에 가서 앉아 손님이 되어보는 것이겠구나 생각이 든다. 알고 있어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도 모르는 게 참 많다. 무언가를 파는 사람도 알리는 사람도 분명 무엇의 소비자 혹은 손님으로 살고 있지만 그때의 내 마음을 1초만에 까먹는다.
이 카페의 잘못을 기록하기보다, 내가 손님일 때의 마음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남긴다.
그리고 이번엔 션 멘데스가 노래를 절고 있다. 빨리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