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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프리랜서 Sep 23. 2023

창업 3개월 23일차, 내 동업자는 암환자

날짜를 이상하게 세고 있었네 ㅋㅋㅋ

나는 암환자와 일한다. 그냥 일하는 거 아니고 동업한다. 내 동업자를 설명하기엔 암환자라는 말 만으론 매우 모자라지만, 오늘 이야기할 주된 주제는 암환자와 어떻게 일하는 지에 대해 쓸 거기 때문에 이렇게 소개했다.


동업자는 2주에 1번씩 항암 치료를 한다. 항암 치료를 하면 한 1주일은 일을 전혀 할 수 없다. 그 주의 목표는 최대한 회복하여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종종 동업자의 상태를 살펴 가며. 아, 나는 동업자와 동거도 한다. 자질구레한 일부터 큼지막한 일까지 해야만 하는 일들을 일단 하면서 업무로 복귀해 빠르게 파악이 필요할 동업자를 위해 그동안 내가 무슨 일들을 해놨는지를 할 수 있는 한 기록한다. 물론 이 일들은 꼭 같이해서가 아니라 혼자 있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회복에 시간이 딱 일주일이 걸릴 지, 덜 걸릴 지 더 걸릴 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냥 되는 대로 그에 맞게 일을 하는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동업자가 항암의 여운을 털어내려 노력하며 일상으로 복귀한다. 일주일 동안 지나간 업무들을 살피고 무엇부터 해나가야 하는지를 파악하고 바로 실전에 투입되기 시작한다. 우린 말 그대로 동업자기 때문에 누가 일을 시키지도, 관리자가 따로 있지도 않지만 적당히 서로 알아서 역할을 찾아 눈치껏 일한다.


전에는 혹시나 일이 너무 버겁진 않을까, 어느 날은 이 일보다 본인이 원하는 일상을 좀 더 즐기고 싶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같이 일하는 것 자체가 마치 내가 일을 시킨 것처럼 마음이 무거운 적도 있었다. 그러려고 그런다기보단 자연스럽게. 누구나 나처럼 일하면 그런 때를 마주할 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선택은 동업자에게 넘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할 때 즐겁고 무엇을 하고 싶은 지는 충분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미리 생각하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 부터다.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마치 내 동업자와 같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 비하면 마치 내가 무한한 시간을 지닌 것처럼. 잘 생각하자. 그렇지 않다.


나의 시간도 전혀 무한하지 않고, 나에게 기회가 수없이 쏟아지지도 않는다. 환자인 것과 상관 없이 내 동업자와 오래도록 일을 해나가고 싶다면 마음을 무겁게 갖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응원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일을 할 땐 확실히 일을 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다.


싸우기도 하고 화내기도 한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요구하고 압박하기도 한다. 원래 동업자와의 관계처럼.


그러지 못한 적도 있다. 내 동업자의 주변 사람들처럼 일단 모든 일을 응원해주고 좋은 소리를 하고, 스트레스 받게 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 해서. 그랬더니 어느 날 일을 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고 정신차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독해졌다기보단 생존력이 생겼다고 하고 싶다. 나를 응원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응원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자꾸 까먹는다.


가여이 여기는 마음 만으로, 안쓰러워하는 마음 만으론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종종 얘가 날 환자라는 걸 잊은 거 아닐까 할 정도로 대한다.


-


내가 이 정도로 하는 이유는, 처음 이렇게 일할 때 먹었던 마음 때문이었다.


과연 내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일할 수 있을까, 설령 나중에 업무를 거의 나 혼자만 하게 된다 해도 나는 괜찮은가. 이 일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왜 이걸 선택했지 하며 후에 동업자를 탓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등등


수많은 고심 끝에, 그래 다 괜찮을수만은 없겠지만 나는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장암 4기를 판정받은 상황에서 그 정도의 열정이면 나는 충분히 같이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쉽지 않고 예측되는 일은 거의 없다. 배려만 할 수도 없고 압박만 할 수도 없다. 그 무엇도 평범한 것은 없고 평범하게 일하기 위해 우린 서로 각자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서로가 무거운 마음을 각자 따로 갖기도 한다.


지치고 울고 싸우고 그러다가도 다시 해보고 몇가지는 해내고 실패도 해보고 서로 격려도 하고 힘을 주기도 하고 웃고.


누군가는 우리의 동업에 수많은 물음표를 띄울 것이다. 왜 저렇게까지 일하지?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우리는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파악하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일하는 것 자체의 소중함을 진심으로 잘 알고 있다. 누군가 일을 하며 느끼는 성취감이 100 정도라면, 우리는 1000 정도 된달까.


일반 모드에서 보스몹을 깨는 쾌감과 하드 모드에서 보스몹을 깨는 쾌감 정도로 비교하면 되려나.


때때로 즐길 수 없는 것조차 즐기는 우리를 보며 우린 서로 생각한다. 쟤는 또라인가보다. 우린 또라이가 맞고 그래서 이런 일들을 해나간다. 뭐 어쩔 수 있나. 결론은 항상 같다. 그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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