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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프리랜서 May 07. 2021

더 이상 할 게 없어 졸업했다

유예를 더 할 이유가 떨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이렇게 막힐 줄 알고 있었다. 저녁을 먹지 않고 출발하려 했지만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내 속이 우동집을 발견하고 놓치지 않은 탓이다. 날이 점차 더워진다. 창문에 습기가 차오를 때쯤 기사님은 에어컨을 틀어주셨다. 겉옷을 벗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한 결 낫다. 밖은 아직 바람이 꽤 거세다. 외투를 입을지 아침마다 고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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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대학 생활은 아주 평범했다. 4.5점 만점에 3점대의 딱히 뛰어날 것 없는 학점.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딱 그 정도였다.


팀플은 아주 재수가 없었다. 무임승차를 만나지 않은 적이 없어 나는 아주 화가 많은 학생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나도 놀았어도 좋았겠다 싶다.


교환학생을 너무 가고 싶었는데 토익 점수가 필요했다. 공부를 미루다 "이러다 못 가겠는데?"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850점 커트라인에 턱걸이인 855점을 갖고 합격했다. 내 점수로 인기가 많은 곳은 지원해봤자 떨어질 것 같아서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라트비아로 지원했다.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꽤 괜찮은 곳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누군가에게 소개하기 근사한 이력이 되었다.


다녀와서는 취직이 걱정돼서 끊임없이 인턴을 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되는 대로 다녀봤다. 그러고 나니 졸업을 신청하라고 과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아니? 난 인턴 더 해볼 건데? 대학생 혜택 더 받고 싶은데? 그래서 유예를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이었다. 뭐 필요하면 더 하면 되지.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너는 왜 졸업을 안 하니? 글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졸업을 해야겠다 싶었다. 졸업 이후에 무엇을 할지 몰라 미뤄둔 것이었는데 미룬다고 할 게 생기진 않았다. 당연하지만.


1년 치 찍을 사진을 그날 전부 찍었다. 못 봤던 얼굴들도 보고, 진짜 모르는 얼굴의 후배들로부터 축하도 받았다. 맛있는 밥도 먹고 친구들과 모여 졸업 그 자체를 축하했다. 우린 아무도 졸업 그 이후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여긴 파티니까. 즐거운 이야기만 해야 했다.


다음날 내가 걱정했던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아무것으로도 나를 설명하거나 소개할 말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나마 나를 분류하는 말은 취준생이라는 말이었는데, 사실 따지면 난 여기도 들어갈 수 없었다. 취준생,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 난 학생이 아니었다. 이제 생각났다. 내가 유예를 한 이유는 난 나를 뭐라 소개할 말이 하나라도 필요했다. 벌거벗고 싶지 않았다.


숨 막히는 자유가 다시 시작됐다. 내 식사는 눈칫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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