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하기를 너무 바래서 그래
난 불교를 좋아하는 카톨릭 불량 신자다. 신자라고 하긴 모호하다. 왜냐면 주일에 성당을 안가니까. 그렇지만 신자긴 하다. 성모마리아 목걸이도 하고 있고, 세례도 받았고 로사라는 세례명도 있으니까. 모태신앙이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어릴 적 날 불교캠프에 보냈다.
왜였을까?
불교에 끌린 건 그때부터였....다는 건 거짓말이고 스님의 매끈한 머리를 만지기 좋아했고 108배를 해본 적 있다는 것 외에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 8살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흠.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연유는 유튜브에 "왜 살지"라는 말을 검색해본 후다. 직설적인 답변으로 유명한 스님의 영상이 나왔다. 스님은 "왜 살지 라고 자꾸 물으면 이유가 없다. 사는 덴 이유가 없고 태어난 덴 이유가 없다. 그냥 나왔으니 사는 것이다. 헌데 자꾸 왜사느냐 물으면 그 끝은 자꾸 죽자 죽어야겠다 밖에 없다."라는 말을 했다. 그날 난 내가 일부러 나를 죽이려 그런 생각을 반복하는 것인지 처음으로 고민해보았다. 답을 구하려 했는데 답이 없다는 답변이 오히려 나를 속시원하게 만들어준 것도 같았다.
유재석씨가 나오는 모 프로그램에 한 스님이 나오셨다. 스님은 유재석씨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어냐 물었다. 조세호씨가 물은 것 같기도 하다. 유재석씨는 "그냥.. 크게 다들 엄청 좋은 일이 있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있으면 좋지만요. 근데 크게 나쁜 것도 없이 모든 것이 무탈했으면 한다."라고 한다. 그러자 스님은 무탈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설명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은 내가 원하는대로 절대 조종할 수 없다. 무탈이라함은 내가 아닌 내 주변에게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곧 스님들의 출가의 이유다.
그래서 잠시나마 출가한 나를 상상해보았다.
내가 외적으로 자랑할 것이 썩 없지만, 두상은 둥그런 편이라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자꾸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리고 그런 나는 주변사람의 영향을 언제나 받는다. 너도 그리고 그 옆의 너도, 나의 친구도 엄마도 가족도 행복해야 비로소 내가 행복할 수 있다. 그 중 어느 하나가 불행을 겪는 순간 난 쉽게 우울에 전염되고 만다. 내 행복의 조건은 아주 까탈스러운 것으로 스스로 정해버린 탓이다.
우린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을 좇아 우울한가보다.
미스코리아에 나온 어느 참여자가 했던 "세계평화"라는 소원을 진짜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계 최고로 우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노력해서 해내는 것.
할 수 없는 일을 바라며 얽매여 있는 것.
그 것들을 구분하는 게 참 쉽지가 않다.
그레고리 성가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