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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이 있는 삶

by 아인잠

하얀 종이 위의 점 하나.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시간에 한 아이가 백지 위에 점 하나를 찍어놓고 말했다.


"선생님, 여백의 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백의 미가 차고 넘치는 이 작품 앞에서

선생님과 반 아이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런데 나는 그 아이의 점 하나가 다르게 보였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찍은 그 점 한 점.


아이는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점하나 조차도 찍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작품을 만들어나갈 동안 어쩔 줄 모르고 앉아있던 녀석은 마감시간에 임박해서야 신중하고 힘겹게 점 하나를 찍어놓고는 겸연쩍게 말했다.


여백의 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점 한 점

글 한 줄.

첫 한 발.


그 하나를 내보내기까지 힘겨운 감정의 무게는 본인만이 아는 것이다.


내가 독립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가 그랬다.


'요즘 어떻게 지내? 지금 기분은 어때? 잘 지내?' 그 짧은 질문 하나에도 목구멍에서 대답이 나오지가 않아서 울먹울먹 하던 때가 있었다.



아이의 어쩔 줄 모르는 눈빛을 본 나는 그 아이가 점 하나라도 찍을 수 있기를 마음으로 응원했고 드디어 그 아이가 점 하나를 힘주어 찍었을 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하는 모습도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아이는 점 하나를 찍었지만, 충분히 용기 있는 아이였다.

아이들에게서 웃음이 빵빵 터질 때도 나는 진중한 그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라고 해서 고민의 크기가 작은 것이 아니다.


아이라고 해서 슬픔의 무게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아이가 찍은 점 하나.


그가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여백의 미가 내 삶 속에도 있기를 바란다.


내 삶의 여백이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삶의 여백이 온통 잡동사니로 가득 차지 않기를, 불필요한 것이 정돈되고, 있어야 할 것으로 채워져 갈 때 내 삶이 비로소 내 삶다워져 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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