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무성할 때는 몰랐는데, 아주 오랜만에... 잎이 거의 떨어지고 있는 즈음에 가보니, 노란 열매가 보였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과.
모과나무였다.
인심 좋은 카페 주인은 모과의 예쁜 향을 손님들에게 전해주려는 듯, 모과를 잘라서 향이 퍼지도록 곳곳에 놓아두었다.
오가는 길목에 모과 향이 그윽하고, 카페 주인의 배려와 인심이 느껴지는 곳...
살아오면서, 그리고 살아가면서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배려'로 인해 행복해진 적이 언제였던가... 알고 보면 무수히 많은 배려가 있었을 텐데 그동안의 팍팍한 삶 속에서 내 맘속에 오래 머물게 하지 못하고, 오래 담아두지 못하고 흘려보낸 마음들이 뒤늦게 느껴져 아차 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지인의 제안으로 터키 여행을 다녀왔다.
아마 지인이 나에게 상세히 묻고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정하게 했다면, 내가 그토록 빠르고 용기 있게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세 아이도 눈에 밟히고, 나의 일들과 연로하신 부모님(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드려야 하므로),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 이런저런 생각들이 애써 생각하지 않아도 개미군단처럼 일사천리로 내 머릿속을 비집고 다니며 정렬했지만, 나는 여행을 가기로 선택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나의 터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시간을 갖기 위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이별 여행.
지난 시간으로부터의 이별과 나의 옛 자아로부터의 이별과 독립. 그 전주곡으로 나는 여행을 선택했다.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한 거점도시.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 하차.
출국 전날 저녁. 서울에 도착하자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퍼부었다. 본래 계획은 버스를 타고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가려했으나 천둥번개에 비바람이 몰아치니 사람들이 정류장에 몰리고 교통상황이 아수라장이 되어 택시든 버스든 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출국 전에 하룻밤 신세 질 선배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사히, 출국일 새벽,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얼마만에 눈 앞에서 보는 비행기인지...13년 만의 비행기 탑승.
조식, 중식 기내식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드디어 12시간을 날아서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
터키 입국.
이스탄불 공항은 크고 웅장하고 멋졌다.
앞으로 어떤 곳에 가게 될지,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고, 내가 딛고 서있는 땅이 터키 라는 것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던 첫째날 저녁.
사원 앞에는 이슬람교 신자들이 손과 발, 귀, 얼굴 등 (죄를) 씻고 들어가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씻을 수 있는 곳이 사원 앞에 마련되어 있었다.
여행 첫날엔 사원 외부만 보았고 마지막 날에 내부에 들어가 보았다.
근처 유명한 그랜드바자르 시장을 둘러보았는데 물건 구경하는 것보다 사람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이쁘던지... 터키 아이들은 너무 이뻤고 얼굴에 뭘 묻혀도 다 이쁘게 보였다.
웃어도 이쁘고 울어도 이쁘고
그러나 공통점은 '엄마들은 힘들어했다'.
-이쁜 옷 차려 입혔는데 맘에 안든다고 칭얼칭얼
-엄마 구경하는데 빨리 가자고 징징징
-말은 안하고 눈물 콧물 간난이 되어서 징징징
-구경은 안하고 엄마꽁무니만 따라다니며 툴툴대는 아이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알아듣기는 힘들었으나 재미있는 사실은, 엄마의 표정은 통역이 전혀 필요없는 만국공통표 였다.
짜증과 피곤, 자유를 갈망하는 엄마의 애석한 날개짓에 나는 이심전심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에 내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괜찮아요, 다 지나가요...
아이가 한창 이쁠 때예요.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엔 추억이 될 거예요... 이딴 쓸데없는 말로 참견은 하지 않았다.)
'내 아이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랑은 하지말자, 내 아이들은 잘먹고 잘자고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자고 그렇게 마음먹었다. 내가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것이 이 여행을 통해 모두가 행복하고 좋은 유익이 될 것이라 믿자,
어렵게 떠나오고 맞이한 여행을 걱정과 미련으로 채우지 말자고.
(그러기 위해 나는 아이들 앞으로 매일 택배를 보냈다. 레고, 수수깡, 만들기 재료들, 배달 아이스크림, 배달 빵... 매일 엄마보다 더 반가운 '택배 선물'을 기다리며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길 바라며!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