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로 일할 때 여의도와 가까운 서강대교 아래 친구와 앉아서 강물을 보며 대화한 기억에 대한 것이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이 참 외로웠다.
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푸르고 창창한 미래를 상상하며 밤에 바라보는 강물마저 푸르다고 표현을 했었다. 나는 결혼도 예정에 없고 일도 힘들었을 때라 강물 앞에 나와 앉아있는 시간도 눈치가 보이고, 어서 가서 아이템이라도 하나 더 찾아야 할 텐데 하는 마음만 갖고 있었다. 답답하니 앉아는 있는데 내 눈에 비친 강물은 차갑고 무겁고 캄캄한 물결이었다.
시커먼 밤에 앉아 바라보는 강물도 마음에 따라서 푸르게도 보이고 까맣게도 보인다는 것을 그때 느꼈던 것 같다.
그로부터 15년쯤 뒤에, 나는 터키의 강물 앞에 서있게 되었다.
터키의 강물은 빛나고 조용하고 눈부셨다.
나도 춤을 출껄 그랬다. 어색해서 어쩔줄을 몰랐네 by 아인잠
사람들은 다리에 나와 누군가의 연주 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이렇게 에브리바디 단합된 풍경은 처음 겪었다.
해 질 녘이 되면 창문 너머로 풍기는 어느 가정의 저녁 냄새는 한국을 생각나게 했다. 메뉴는 다르지만 창문 안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 나 엄마의 목소리, 툭탁거리는 생활소음 등이 정겹게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들어갈 수 없는 낯선 집들의 풍경은 나를 조금 외롭게 만들었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 모 아나운서가 남산에서 불이 환히 밝혀진 서울의 집들을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서울 하늘 아래 이렇게 집들이 많은데, 내가 들어갈 방 한 칸이 없네."
낯선 타지에서 내가 들어갈 집을 찾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머물고 편안히 기댈 수 있는 '나의 집'이 떠오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시간쯤이면 한국 우리 집에서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앉아있을지가 그려지고, 그려진다는 것은 그리움을 뜻했다.
이왕 다 두고 여행을 떠나온 이상 집 생각은 하지 말라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생각은 그럴수록 떠올라 내 머릿속에 자꾸만 맴돌았다.
daum 국어사전을 보면 '생각'의 정의는 '헤아리고 판단하고 인식하는 것 따위의 정신작용'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우연히 찾아본 설명 중에 다음의 뜻이 새롭게 와 닿았다.
daum 국어사전
생각이란, '저절로 빠지기 전에 잘라 낸 사슴의 뿔'처럼, 아픈 것이다, 때론 눈물겹고, 나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 잘려나가기도 하고, 내가 예상할 수 없는 사이에 일어나기도 하는 일이다. 생각은 살아있고, 나의 뼈에서 자라나 와 점점 자라난다. 그것이 갑자기 뽑히거나 빼앗길수록 고통의 흔적은 진하게 남는다.
터키에서 생각하다
나도 친구와 마주앉아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나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의 묘미는 나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생각하고 그래서 새로워져 돌아올 수 있는 기회의 선물이다.
문득 걷고싶은 거리를 만나면 내내 눈길이 그곳에 가 머물렀다.
길을 갈 때에도, 사람을 만날 때에도, 내 머릿속의 생각은 가족에 머물고, 나의 집에 머물고, 나의 꿈에 가 닿았다.
여행을 하면서 나의 생각도 여행 중이었다.
나의 생각이 자라난 자리에 상처도 아물고, 새로운 뿔이 돋아나서 이전보다 멋진 모습으로 달라져올 것을 기대했다.
돌아와서 보니, 모든 게 달라 보였다.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는 내 터전, 소중한 내 가족, 사랑스러운 아이들, 나의 책, 나의 책장, 내가 좋아하는 창가, 컵 하나 펜 하나까지...
그리고 다음 여행은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가야지 생각했다.
"얘들아 가자" 사진출처 : 픽사베이
사람은 자기한테 익숙한 일을 하게 돼 있어. 어제 했던 그대로 휴대전화로 문자 보내고 있지 절대 책 안 읽는다는 거야. 어제 뛰던 힘으로 오늘을 뛰는 거야. 직장생활에서도 도약하려면 계속 뛰어야 해. 그럼 생각은 언제 하느냐고? 생각은 뛰다 멈춰서 하는 게 아냐. 뛰면서 틈틈이 하는 거지. - <언니의 독설, 김미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