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하고 제대로 원고를 쓰려면 수련기간이 적어도 1-2년은 필요한 듯하다.
이제 막 내가 담당하는 분량의 원고를 썼던 날, 원고 마감 시간이 임박한데도 나는 마감을 못하고 있었다. 마감 직전에 프린터가 작동되지 않음을 인지한 나는 인쇄를 바로 할 수 있게 프린터를 만지기 시작했고,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프린터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런 식인지는 모르겠지만 2~4개의 프로그램 작가들이 함께 사용하는 프린터는 자주 잉크가 떨어져 원고 인쇄가 심하게 옅은 색으로 되어 나오거나, 용지가 걸리거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고장도 자주 났던 것 같다.
그래도 누가 나서서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복불복으로 재수 없으면, 아니 '머피의 법칙'처럼 하필 원고 마감시간에 프린터가 탈이 나서 제대로 인쇄를 못해 이 쪽 저쪽 옆 프린터기를 찾아 뛰어다니며 인쇄를 해야 했다.
원고 마감시간이 임박해서 어찌어찌 프린터를 겨우 했는데, 프린터에 시간을 쓰는 바람에 내 원고에 채워야 할 내용이 2-3줄 정도의 글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멘붕이 와서 무슨 글을 채워 넣어야 할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방송작가에게는 순발력이 필요한데, 15초 정도의 영상에 들어갈 적당한 길이의 문장을 기가 막히게 적어내야 하는 그 순간에,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렸다. 그때 담당 프로듀서가 나에게 방송국이 떠나갈듯이 크게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대로 땅 밑으로 꺼지고 싶었다.
"0 작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지금 집안 잔치하는 거 아니잖아!!!!!!"
나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고, 바로 성우 더빙이 들어가야 하는 순간까지도 생각해내지 못해 결국 그 방송엔 원고 없이 생방송 중 리포터의 멘트로 겨우 넘어갔다.
나는 원고 마감을 하지 못한 딱 그 순간에 내 생을 마감해버리고 싶었다. 그때 마감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될 줄을 모르고서 내가.
지금 어디엔가 이 순간, 삶의 힘든 외나무다리 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분에게 다가가 손을 붙잡아줄 수가 없다. 부디 그분이 생을 마감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살아남아서 살아남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살아남아서, 좋은 날도 있음을 꼭 다시 느껴보고 세상을 둘러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 많은지, 내가 못 가본 곳이 얼마나 많은지, 그 세상 다 가보고 그리고 다시 생각해봐요...)
'마감하다'
다음(daum) 사전에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어떤 일의 정해진 기한이 끝난 경우, 혹은 어떤 일을 잘 다루어 끝을 맺는 경우, '마감한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아직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에는 현재 나에게 정해진 기한이 끝난 것인지 알 수도 없고 결정해서도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일을 잘 다루어 끝을 맺는 것이 마감이라면, 누군들 이 생의 '마감기한'이 그래도 '지금'은 아닐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을 때는마감 기한도 신에게 있는 것이다. 부디 살아서 생의 마감을 멋지게 해내고, 편안하게 잠자는 듯 휴식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