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싸움은 대부분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나도 상대방을 파악하고 헛점을 알고, 상대도 나의 어디를 공격하면 되는지를 피차 알고 치르는 전쟁에서는 전쟁을 앞두고도 크게 겁날 게 없었다.
그런데, 내가 예상 못한 전쟁에서 누군가 나의 약한 부분을 훅 치고 들어오는 공격에 대해 나는 방어하지 못하고 휘청했다.
아이에 대한 것이다. 어른끼리의 싸움에서는 동등하게 겨뤄볼 만한 싸움이겠지만 아이가 끼어있는 싸움에서는 아이가 나의 약점이 된다.
졸업을 앞두고, 이제 꽃길만 걷게 해주고 싶은 아이가 졸지에 가해자가 되어서 학교폭력위원회에 올려지는 절차를 밟게 되었다. 피해자가 된 학생과 부모의 입장도 힘들겠지만, 가해자가 된 아이나 가해자의 엄마가 된 나의 입장도 황망하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사과를 받기 원하지 않고 한 번에 학폭위라니... 대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어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상황 대처 방법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 누군가는 학교의 권위가 상실되었다고까지 표현하시고, 누구는 학폭위는 워낙 자주 열려서 대수롭지 않은 시대라고도 하신다. 물론 피해자를 보호하고 모두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선도하기 위한 최소한의, 그리고 최대한의 안전장치라는 것도 알지만, 내 아이가 가해자로 졸업을 앞둔 시점에 이리 몰린 상황은 정말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과를 받기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로 학폭위라는 고속도로에 올려졌다.
그렇게 해야만 상대의 억울함과 분노, 상처와 고통이 치유된다면, 그리 하시라고 했다.
고통스러운 몇 주를 보내면서 나는 이제 끝난 줄 알았던 몸살을 다시 앓았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공포였다. 혹여 내 아이가 누군가에게 '이혼한 가정의 아이니 당연히... 아빠 없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 운운하며 함부로 판단한다면 끝까지 가서 나도 상대를 물어뜯어놓고 말겠다는 오기까지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내 아이의 친구들이 우리 집을 제 집 드나들듯 하며 냉장고를 열어대고 헛헛해할 때 간식을 내어주면서도 (솔직히 좀 아까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런 배려와 마음으로 다른 어느 분들도 내 아이를 소중히 여겨주지 않을까,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가 떠안고 이해하며 살아온 세월도 육아의 세월과 같다. 13년.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내 아이를 지키는 방법이 다른 아이의 삶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고, 하나를 잃으면 배로 앙갚음을 해주어서 원통함을 푸는 것이라고, 나는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
내 삶의 기준과 철학, 가치, 양심 모든 게 흐트러지는 며칠을 보내는 것이 그래서 나는 더 괴롭고 악몽 같았다.
심한 몸살 끝에, 지인에게 가서 펑펑 울었다. 그분께서는 내 삶의 멘토 같은 분이다.
울먹이는 나를 보시며 모른 척도 해주시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셔도 돼요 라는 말에 나는 언제나 마음이 활짝 열린다.
나의 큰 고민을 내려놓을 때 이미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아시는 그분은 덤덤히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한다.
오늘 얻은 말씀은, 신께서 이번 일로 나와 아이에게 더 놀라운 일을 예비하신 것일 것이라 하셨다.
하긴, 어디 내가 눈물 펑펑 쏟지 않고서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 굽이굽이 넘어온 과정들이 눈물고개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눈물바다. 이제는 좀 눈물 강이 되나 했더니만, 아직도 내 눈물은 바다를 이루는 것인가.
피해자의 입장도, 그분의 지금까지의 삶 속에 어떤 이유건 그럴 만한 일과 상황들이 있었으리라. 내가 이렇게 억울하고 안타깝고 속상한 상황도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일인 것처럼.
학폭위에서 이제 진행되는 절차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겠지만, 이제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디 좋은 계기가 되어서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 누구도 상처 받지 않고 고통받지 않고 무사히 이번 일이 지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