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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Dec 25. 2019

MRI 기기에 들어가 보니 한 평 공간에 나 홀로이더라

급성 뇌경색으로 MRI 기기에 들어가 보니 알아지는 것이 있었다.


윙~ 하는 기기음 안에서, 온기라고는 하나 없고 딱딱한 그 한 평 공간 위에서 나 홀로 누워있는 모습이 꼭 인생의 마지막 순간으로 들어가는 한 평 크기 '관' 같아서...

MRI 기기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까지 책 읽고, 말하고, 글 쓰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좋겠다...'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인 건지, 어떤 큰 병이 나에게 찾아온 것인지,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온갖 좋지 않은 상황까지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무섭기보다는 차가운 기기음 속에서 '혹시라도 일이 잘못된다면 누구에게 어떤 부탁을 어떤 식으로 남겨야 할까, 세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친정부모님께는 어찌해야 할까.., 인심이 좋으시니 그분들이라면 한 달에 한 번쯤은 아이들을 들여다봐주실 것이다... 마음이 넓으시니 그분들이라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언제든 들어주실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들 뿐이었다.

무엇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누르는 묵직한 공기 속에서 나는 할 수 있는 한 정신을 말짱히 차리려 노력했다.


응급실 통해 정밀검사를 받아서인지 검사 결과를 바로 전해 들었다. 담당 의사는 내게 좌측 뇌에 뇌경색이 발생했고, 어떤 이유로든 혈전이 뇌혈관을 타고 들어와 뇌혈관을 막았다고 했다.

리고 이미 혈전이 굳어 혈액이 막힌 부분의 뇌세포는 다시 살릴 수 없지만, 우선 일주일 입원을 통해서 혈전을 녹이는 치료를 받고, 약물과 주사로 당장의 2차, 3차 후폭풍으로 올지 모를 재발을 막을 것이라고 했다.


뭐랄까, 마치 꿈속에서 듣는 상황인 것인지, 실제 이 일이 내 삶에 일어난 일인지 약간의 현실감은 없는 채로,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말짱한 정신으로 의사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몇 번 있었던 두통의 시기에 혈전이 그런대로 흘러간 덕에 무사히 살아온 셈이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뇌경색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그것은 외나무다리 위에서 위태위태하게 외줄을 타고 건너온 듯한 느낌이었다.


뇌경색에 대해 틈틈이 병원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나 같은 경우는 몇 번의 '일과성 뇌허혈 발작'이 있었던 것 같다.

혈전이 막혔다가 다시 흘러가는, 운 좋게 살아남아서 여러 번의 '일과성 뇌허혈 발작'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날씨가 추울수록 확률상 높아지는 비상사태였을텐데, 더 큰 일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내 인생의 비. 상. 사. 태


MRI에 들어가면 공사판에서 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두두두두... 쿵쿵 쿵쿵.... 마치 땅을 파는 기기음 같기도 하고, 공사판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자극적인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나는 그 속에서도 그 상황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떤 단어로 조합해야 할지 아무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들리는 소리만을 마음속으로 따라 했다.

'두두두두......'

'쿵쿵 쿵쿵......'

'위이잉......'

'엥엥엥엥......'


젊은 나이에 뇌경색에 걸리기는 했지만, 앞으로 치료하고 생활해나가는 이야기들을 글로 쓸 수 있고, 보시는 분들이 느끼시기에 이전과 같다고 느끼실 만큼 글쓰기 능력도 잃지 않은 것 같으니 나는 굉장히 축복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작가이니, 내가 가진 신경을 최대한 이용해서 글로 남겨가고 싶은 마음이다.


내 인생의 비상사태.

어쩌면, 다시금 비상하기 위한, 또 다른 비상사태




https://brunch.co.kr/@uprayer/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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