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항상 나를 괴롭혀 오던 문제, 즉 지독히도 손재주가 없다는 문제에 있었다(중략). 엄지손가락에 관절이 하나밖에 없다. 상부 관절(손톱 쪽에서 먼 쪽 관절)이 있긴 하지만 형태뿐이다. 우리 형제는 그 관절을 구부리지 못한다. 해서 나는 만들기를 지지리도 못했다. 연필과 펜은 능숙하게 쓸 수 있었고(중략) 그 때문에 나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 C.S. 루이스 저(著) 강유나 역(譯)《예기치 못한 기쁨》
C.S. 루이스는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 학자이자 저자로서 지성적인 작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나는 물건들이나 배나 집, 엔진 같은 것들을 만들고 싶었다. 얼마나 많은 마분지와 가위를 망가뜨리고 나서야 결국 절망적인 실패에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 섰는지 모른다.”
그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 섰는지 모른다', 그 절망적인 실패 앞에서... 홀로 흘리는 눈물은 그렇게나 뜨겁고 무거울 수가 없다. 눈물을 흘려도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 것은 눈물의 무게가 꿈의 무게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그 눈물 속에는 절망이 있고 실패가 있으니... 그는 선천적으로 엄지 손가락의 관절이 없는 약점이 있었기에 그의 꿈이었던 배나 집 엔진 등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눈물이 있었기에 현재에도 앞으로도 예비 작가나 작가 지망생, 독자들에게 있어서 그가 훌륭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나는 선천적으로 새끼손가락이 남들보다 한마디가 짧다. 생활하기에 불편함은 없고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않지만 한 때 나에게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피아노 학원을 갈 때마다 선생님이 자로 손등을 아프게 내리쳤다. 엄지손가락에서 새끼손가락까지 쫙 펼쳐서 아래 도에서 윗 도까지 손끝이 닿아야 하는데 나는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짧아서 피아노를 배우기 힘든 손이라며 갈 때마다 타박하셨다.
그래서 나는 피아노를 때려치우고, 선생님을 원망했다. 다른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다른 방식으로 내가 피아노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으리라 생각하면서, 학생에게는 선생님이 중요하다면서!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손가락이 다섯 개가 아니어도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있고, 혼자 인터넷 보고 익혀서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사람도 많았다. 자기 할 노릇인 거라는 걸 나는 뒤늦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간절하면 누가 뭐라 해도 하게 되는 것이 '꿈'인 것이다.
살면서 어떤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꿈은 글쓰기였다. 때려치우고 가방 장사하러 가라는 말에도 좌절하지 않고 썼고, 은근히 또는 대놓고 무시하는 눈길에도 버텼다. 지나고 보면 모든 과정은 시련 없이 성장하지 않았다.
원고를 쓰면 글자 하나하나까지 다 뜯어보시면서 맞춤법 사전까지 찾게 하신 어떤 님은 나의 마지막 방송에서 나에게 악수를 청하셨다. 정말 좋은 글들을 보게 해 줘서 고마웠다고, 원고를 받을 때마다 뭉클했다고 하셨다.
(아니 그럼, 조금씩만 격려해주셨어도 내가 좀 더 힘을 내고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글 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었는데 하는 뒤늦은 원망도 조금 생겼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내가 성장하도록 도와주셨다는 점에서. 나는 그분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나의 글에 나의 못난 모습이 담길 때가 가장 부끄럽다. 글은 멋지고 싶은데 나라는 인간 자체가 모자라서 글이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 것이 작가에게는 비참함이다. 들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독자의 눈은 냉철하기 때문이다.
어떤 표현에도 감동하고 마음까지 꽉 채우는 여운을 주는 것은 내 아이들이 주는 '나를 위한 ' 글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