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에 들어가서 두 번째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요일별로 막내작가만 1명씩 따라붙는 90분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작가만 총 15명에 자료조사 2명까지 필요했던 큰 프로그램에 속했고, 게다가 생방송이어서 나는 속칭 개고생을 하면서 첫 입봉작에서 일을 배워가고 있었다.
요일별로 막내작가가 하는 일 중에 하나는 시청자들의 전화를 받고 적절한 답을 하는 일이었다. 나는 내 책상에서(책상도 없이 선배 작가 책상의 한 귀퉁이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열심히 울리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정말 열심히 받았다. 하루 종일 내 책상에서만 전화가 울리는 듯했다. 나는 6개월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네!
다른 팀 작가들이 표시 안 나게 전화기를 살짝 들어서 통화가 안되도록 만들어놓거나, 전화를 받아서는 내 자리로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 종일 전화받는 일도 많았고 그것을 '나의 일'인 줄로만 알고 최선을 다해서 받았다.
어느 날 선배가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요 녀석들 봐라, 가만히 보니 하는 짓들이 참 못됐네? 벌써부터 저렇게 뻔뻔하게 사기를 칠 수가 있니? 쟤들 전화 안 받고 너한테로 전화 다 몰리게 하고 있는 거 알고 있었어?"
사실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설마설마하고 그 이후 2주 정도 관찰을 했다. 선배의 말대로,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작가들이 없었다. 나만 받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적당히 눈치는 있어서 100% 다 받지는 않고 가끔 전화도 받아주는 센스를 보이면서 눈치껏 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선배는 막내작가들을 모아서 한마디 해야겠다고 했지만, 자칫 내가 고자질을 했다거나 왕따를 당할 수도 있었다. 비사교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그들과 일하는 습성과 노는 문화가 달랐고, 어차피 선배가 나선다고 우리가 대동 단결하여 화합을 이루어갈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그네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선배에게 말했다.
요령껏 처신하겠다고. 그리고 전화를 많이 받으면서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거나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시청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시청자들의 요구를 파악했고, 아이템을 얻었으며 전화받는 법, 대처하는 법, 답변하는 법을 알아갔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것은 제보를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일하다 보면 억울하기도 했다. 어떤 PD님은 나만 무시했다. 너는 그렇게 잘하는 게 없고 작가가 글을 왜 그렇게 못쓰냐고. 1년 뒤 알고 보니, 다른 요일 작가는 메인작가가 막내들의 글을 다 검열하고 수정하여 다 뜯어고치고 있었다. 우리 팀 선배 작가는 내 글을 건드리지 않고 적절한 조언만을 주었다. 그래서 내 글은 더디 성장하는 듯 보였고 어렸다. 그러나 1년 뒤에 작가로서 쓸 수 있는 글은 달라져있었다. 그 피디님께는 2년 뒤에 사과를 받았다. 그때 미안했다고.
사람은 나를 배신해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언젠가는 내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 몰라준다고 해도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길 바란다는 것이 나의 신조였다.
방송국에서 전화를 받다 보면 내 경우에는
가끔... 이 아니라 문득.... 자주.. 종종.. 이상한(?) 분들로부터도 전화가 많이 왔다. 주로 (앳된 목소리로) 막내 여자 작가들이 전화를 받다 보니 여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시간 많은 남자들이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시비를 걸어대거나 질문을 던져대곤 하는데... 나의 다년간의 전화 몰빵 대처의 경험으로 인해 노하우가 생기는 장점도 있었다.
아래 자료조사 후배들 나이가 25살 정도였기 때문에 간혹 막강한 상대를 만나면 몸 둘 바를 몰라할 땐..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실 별것 아니지만 잘못 대답할 경우 1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상대방이 항의하면서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곤혹스럽고 피곤해진다. 그렇다고 작가 쪽에서 먼저 끊으면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다른 제보전화를 받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최대한 상대방에 먼저 전화를 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대책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어이없었던 세 남자 퇴치 경험을 소개한다.
1. 서울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하철이 어떻고~ 낙성대가 어떻고~ 한창 실랑이를 하는 것이었다. 버스는 몇 번 타고, 뭐.. 알아서 가시라는 둥.... 한창 싸우길래. 뭐야? 하고 내가 전화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한마디를 해줬다. "국영수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하세요~" 어이없어하는 찰나에 선제공격을..."그럼 끊어도 되겠습니까?" 그래서 해결됐다.
2. 사람들이 나더러 바보라고 하는데, 그냥 콱 죽어버릴래요~ 이런 경우... 자살하겠다고 덤비는 사람한테는 말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잘 생각해보시고 그래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신다면, 내일 다시 전화 주세요" 그리고 다시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걸로 안다.
3. 다짜고짜 "저랑 결혼해 주시겠어요?" 이런 경우.. '죄송합니다만 저 어제 결혼했는데요~ 앞으로 좋은 분 만나게 되실 겁니다. 행운을 빌어드릴게요, 건강히 지내세요'
꼭 상황에 들어맞는 해결책은 아니지만. 상대방보다 한술 더 떠서 대답해주는 게 좀 편하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해서는 더 시간을 끌고 복잡해질 뿐이지 계속 울리는 전화기를 안내양처럼 받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옛 일기장을 뒤적거려 추억 삼아 떠올려본 일이지만, 나도 어렸고 철이 없었다. 더 지혜롭게 어른스럽게, 훌륭하게 대처할 수 없었을까는 지금 생각해봐도 머리 아프다. 다만, 그 나이 그 시절에 나는 그렇게 일을 했고, 그런 일들이 내 수준에 맞는 나에게 적절한 성장을 이루어갔을 거라는 믿음이다.
어리석었던 일들도, 미련스러웠던 일들도, 부끄러운 기억도 너무나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있는 것은 뭣도 모르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을 용감하게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것이다.
더 미련하지 않고, 더 어리석었지 않고, 더 부끄럽지 않았던 것에 나를 토닥여주며, 앞으로의 삶에는 40대의 나로 어울리기를, 적절하기를, 괜찮은 모습이기를 바라본다.
그때 그 시절, 나에게 전화 몰빵을 해주었던 그 녀석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지...
*방송을 만드시는 제작진 여러분의 수고를 늘 떠올려봅니다.
*개인적인 추억담일 뿐입니다.
*방송은 정의로워도 방송을 만드는 사람의 인성은 반드시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지금도 수고하시는, 그리고 예비 작가님들, 적어도 본인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