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에 견과류가 좋다고 해서 한 박스 주문해서 먹고 있다. 그런데 저번에 먹었던 제품은 견과류가 바삭거리지 않아서 별로였는데 이번에 주문한 제품은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나서 아이들도 맛있게 먹고 있다. 주섬주섬 먹고 있는데 막내가 화장실에 간다면서 자기 몫을 나에게 맡기고 갔다.
가지고 있다가 너무 맛있어서 호두, 아몬드, 캐슈너트을 하나씩 집어먹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자기 그릇에 견과류 몇 개가 사라지자 막내가 정확히 알아챘다. 엄마가 먹어버렸다면서 막내가 소리쳤다.
"엄마, 자꾸 그렇게 몰래 먹으면 나중에 할머니 돼서 도둑 돼!"
그리고 연이어 말했다.
"몰래 훔쳐먹지 말고 한 봉지 더 뜯어먹으면 되잖아!"
견과류는 내 돈 주고 내가 샀는데 이렇게 구박받고 나니 치사스러워서 한 봉지 더 뜯어먹었다.
아이나 나나 웃으며 장난치듯 말했다. 그리고 나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옛 말이 떠올랐다.
막내의 나이 때 나는 아빠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었다.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가면 조그만 분식집에 삶은 계란 하나를 100원에 사 먹을 수 있었는데 나는 매일 100원을 살짝살짝 가져다가 친구들과 삶은 계란을 하나 사 먹고 놀고 온 것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밟히고 말았다. 나도 결혼하고 엄마가 되고 보니 알아지는 것이 있었다. 부모는 자식 눈만 봐도, 자식 뒤통수만 봐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빠는 '네가 한 짓을 네가 알렸다! 하지 않으시고 '혹시 동전을 가져간 적이 있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끝까지 아니라고 했고, 아빠는 하루 날 잡아서 앉은자리에서 여러 번 물으셨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여러 번 아니라고 끝까지 말했고(무서워서가 아니고, 부끄러워서,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빠는 나에게 한마디만 하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니라고 하니, 아빠는 너를 믿으마, 그런데 하나 알려주고 싶은 건 있어.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단다... 뜻은 아마 알아지게 될 거야...' 하고는 아빠는 평소처럼 정확한 시간에 씻고 잠자리에 드셨다.
엄마 아빠는 그 이후에 다시는, 한 번도 그런 말씀을 꺼내신 적이 없고, 나도 다시는 그런 만행(?)을 저지른 적이 없다.
그랬는데.... 세월이 훌쩍 지나 내가 당시의 부모님 나이가 되자, 내 딸에게 그 말을 또 듣고 있게 된 것이다.
"엄마 나중에 할머니 되서 도둑 돼!"
나잇값을 못하니, 내가 도둑도 되었다가 아이만도 못하게 되었다. 그때 당장의 부끄러움을 모면했던 게 내내 부끄럽더니, 막내를 통해서 나는 부끄러움을 씻어내고 도둑 할머니가 되지 않고 바르게 자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정신을 가다듬었다.